평소 같으면 왁자지껄하다는 구내 식당도 종일 차분한 분위기였다. 식당에 모인 한국GM 직원들은 대화도 없이 기계적으로 수저를 움직이며 된장찌개를 입속에 밀어 넣었다. 같은 건물 2층 '노사대회의실'에선 적막감마저 흘렀다. 원래 이날 여기서 진행할 예정이던 노사교섭은 불과 15분만에 파국으로 끝났다.
중앙일보가 20~22일 한국GM 부평공장에서 만난 복수의 노사 관계자에 따르면, 노사협상은 조금씩이나마 접점을 찾고 있다. 양측은 완고한 입장에서 꽤 물러섰다. ‘연간 3000억원 수준의 복리후생 비용 중 1000억원을 절감해야 한다’는 사측의 요구에, 노조도 ‘얼마든지 수용할 용의가 있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이중 미래 발전 전망을 명문화하라는 요구는 노조의 ‘협상 카드’로 보인다. 원래 스파크·다마스·라보 후속 모델과 에퀴녹스·트래버스·콜로라도 등 신차를 국내 공장에 배정하라는 요구지만, 노조도 ‘터무니없다’고 인식하는 분위기다. 직영 정비사업소도 큰 걸림돌은 아니다. 노사는 당장 정비사업소를 외주화하지 않는 대신, 별도 수익모델 개발을 향후 논의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8일엔 갑자기 말리부 후속모델 배정 문제가 튀어나왔다. 사측은 부평2공장에 말리부 후속 모델을 배정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제10차 교섭에 임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후속모델 배치는 본사가 결정하지 않았던 사안이었다. 본사 입장을 전하자 노조는 분개했고 상황은 더 꼬였다.
협상이 자꾸 엉키는 배경엔 노조 간 의견차이도 존재한다. 군산공장 고용은 군산지회, 말리부 후속모델은 부평지회, 정비사업소는 정비지회 요구안이다. 사측은 노조가 한 가지를 양보하면 한 가지를 수용하길 원하지만, 노조 지도부는 지회 눈치를 보는 상황으로 전해진다.
노사교섭은 안건을 한 가지씩 처리하는 대신, 일괄적으로 잠정 합의하는 방식이다. 이견을 일부 조율했다고 해서 23일 협상 타결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유다. 또 폭력사태 등 돌발 상황이 벌어지면 갑자기 협상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GM 노사가 23일까지 잠정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할 경우, 한국GM 이사회는 이날 밤 법정관리를 의결한다.
인천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