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68)이 ‘비련’의 네 음절을 내뱉자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KBS공개홀이 발칵 뒤집혔다. 이곳에서 진행된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 녹화 분위기는 1992년 방송 활동 중단 이후 TV에서 좀처럼 듣기 힘든 '오빠'의 음성에 후끈 달아올랐다. 2011년 ‘나는 가수다’ 이후 7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조용필은 MC 신동엽의 요청에 '비련'의 한 소절을 맛보기로 들려줬다.
이날 녹화장은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다. 곳곳에 ‘세상의 중심 조용필’ ‘용필오빠 옆집 사는 신동엽 왕부럽’ 등 플랜카드가 걸렸다.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은 새벽부터 진을 쳤다. 이태헌 PD는 “방청 신청이 평소보다 7~8배 가량 많았다”며 “보다 많은 분과 함께 하기 위해 총 900석인데 입석까지 1200명씩 뽑았다”고 밝혔다. 이날 녹화는 오후 3시부터 밤 12시까지 총 9시간 동안, 중간에 관객들을 한 차례 교체하며 진행됐다.
그의 데뷔 50주년을 맞아 ‘불후의 명곡’ 사상 최초로 3주 동안 한 가수의 노래로 방송하는 만큼 출연진 면모도 화려했다. 데뷔한 지 30년 넘은 김종서부터 갓 3년 된 보이그룹 세븐틴까지 총 16팀이 출연했다. 이들도 전설 앞에서는 연차와 경력이 무색한 팬으로 되돌아갔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리메이크해 큰 사랑을 받았던 박정현은 “선배님 앞에서 노래하는 게 소원이었다”며 울먹였다. 조용필 노래를 하도 듣다 보니 노래는 물론 작사ㆍ작곡까지 하게 됐다는 김종서는 무대를 마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이태헌 PD는 “히트곡이 워낙 많아 선생님의 신청곡 ‘고독한 러너’ ‘그 또한 내 삶인데’를 포함한 1차 선곡 리스트를 만드는 데도 고민이 많았다”며 “출연하고 싶어하는 가수들도 많아서 스케줄만 되면 5~6주 분량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각자 하고 싶은 곡을 고르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총 25곡 중 1~3지망을 선택하고 조율이 힘들면 제비뽑기를 하는 식으로 정했다.
녹화 중간중간 “요즘 시대에 안 태어난 게 다행” “어쩜 다들 그렇게 노래들을 잘하냐”며 감탄하던 그는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앞으로 후배들이 내 노래를 리메이크한다면 무조건 오케이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엔 혹여 원곡을 망쳐놓을까 봐 걱정돼 거절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실력이 출중해 안심된다는 것이다. 50주년을 맞아 차례로 공개되고 있는 ‘50&50인’ 릴레이 인터뷰에서도 이승기ㆍ아이유 등 후배 가수들이 “선배님과 듀엣을 하고 싶다”고 밝히는 등 지금도 관련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조용필과 그림자’로 활동하다 밴드명을 ‘위대한 탄생’으로 바꿨을 때 주변에서 많이 비웃었어요. 조촐한 탄생 아니냐면서. 하지만 과감하게 바꾼 덕분에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잖아요. 처음 방송 활동을 중단했을 때도 공연장에 가면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TV에 안 나오면 한물갔다 생각하던 시절이었죠. 10~20년 안에 이 많은 걸 이룩할 순 없었을 거예요. 오래 했기 때문에 기록도 만들어지고 여기까지 온 거죠. 많은 분들과 함께 오랜 시간 동안 노래했으면 좋겠습니다.” 전설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21일, 28일, 5월 5일 오후 6시 방송.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