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이 고객의 마일리지로 대한항공 계열사나 한진그룹 관계사를 지원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대한항공의 마일리지가 소멸하는데, 마일리지 용 좌석은 극히 일부분이고 다른 사용처도 곰 인형 구매 외에는 별로 없다는 본지 보도(3월7일자 종합2면)에 따라 대한항공은 지난달 말 마일리지 사용처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는 사용처 확대 방안 등에 담긴 상품의 면면이다.
대한항공 홈페이지에 따르면 ‘마일로 호텔로’라는 호텔 이용 상품이 있다. 대한항공 마일리지로 호텔을 이용할 수 있는 상품인데, 예약 가능한 호텔이 제주 칼호텔·서귀포 칼호텔·그랜드 하얏트 인천·와이키키 리조트·인터컨티넨탈 로스엘젤레스 다운타운 등 5개뿐이다. 이 중 국내의 세 호텔은 모두 칼호텔네트워크 소속인데, 칼호텔네트워크의 대표이사는 최근 일명 '물컵 갑질' 논란을 빚고 있는 조현민(35)대한항공 전무다. 외국의 두 호텔도 모두 한진그룹 소유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항공사 마일리지 사용처 중 비행기 표 예약 다음으로 수요가 많은 곳이 호텔 예약이다.
차를 빌릴 수 있는 ‘마일로 렌터카’란 상품은 대한항공 관계사인 제주 한진렌터카 한 곳만 이용할 수 있는 점도 문제지만, 마일리지 가치를 현실성 없게 떨어뜨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제주에서 K5차량을 24시간 빌릴 때 마일리지 8000마일을 차감하는데 편의점 등에서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롯데 L포인트와 대한항공 마일리지의 교환비율(22포인트=1마일)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17만6000원이다. 그런데 제주 한진렌터카 홈페이지에 가면 K5 24시간 이용 가격이 그의 6분의 1수준도 안 되는 2만6500원으로 나와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이마트·기내면세점·CGV 등에서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는 점이 대한항공과 다르다. 하지만 아시아나도 숙박 상품으로 구비한 금호리조트는 그룹 계열사다.
해외 항공사 중에서는 이런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캐세이퍼시픽 항공의 경우 ‘아시아 마일즈’란 여행 프로그램에 가입돼 있어 전 세계의 호텔을 마일리지로 쓸 수 있다. 아시아 마일즈 홈페이지에서 서울에서 쓸 수 있는 호텔을 검색한 결과 워커힐·더 플라자·파크 하얏트 등 163개 호텔이 올라왔다. 델타항공은 ‘마일스 투 고’란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수천개의 호텔을 예약할 수 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항공은 마일리지를 두바이 면세점 등에서 쓸 수 있고, KLM 항공은 온라인 면세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송상민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정책국장은 “해외 선진 항공사는 고객의 자산이자 항공사의 빚인 마일리지를 현금과 동일하게 여기고, 고객이 마일리지를 쓰는 데 불편함이 없게 다양한 옵션을 마련하는 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항공은 장부상으로 마일리지를 비유동부채(비유통부채 하의 이연수익 항목)로 계상해 놓고 있다. 대한항공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이연수익이 2조615억원으로 2016년 1조8682억원보다 10%가량 늘었다. 이연수익에는 신용카드사에서 항공마일리지 적립 대가로 대한항공에 지급한 현금 등이 포함돼 있다. 대한항공은 ‘마케팅 제휴’란 명목으로 신용카드사에 1마일당 20원 가량을 받고 마일리지를 팔고 있다. ‘고객이 쓴 돈’으로 계열사를 부당지원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대한항공이 문제의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마일리지 사용처와 관련 계열사 부당지원 및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는지도 세심하게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팀 민경모 차장은 “계열사 호텔 외의 다른 호텔이 마일리지 사용처로 등록해 달라는 요청이 없어 우선 계열사 호텔만 쓸 수 있게 한 것”이라며 “마일리지 사용처에 관한 사항은 대법원 판례 등을 봤을 때 ‘자유 계약’의 영역이기 때문에 위법의 소지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항공은 고객들이 작은 단위의 마일리지까지 모두 쓸 수 있게 지속해서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