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선 2035

[시선 2035] 좋은 소식이 뭔가요?

중앙일보

입력 2018.04.1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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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정치부 기자

“뭐 좋은 소식은 없니?”
 
오랜만에 만난 회사 선배가 묻는다. 사실 엊그제 본 대학 친구, 조금 전에 통화한 취재원도 같은 걸 물었다. “좋은 소식 있으면 당연히 알려드려야죠”라고 말하고 웃어 넘기는 게 모범 답안임을 알면서도, 가끔은 부러 한 번씩 되묻는다. “좋은 소식이 뭔가요?”
 
안다, 무슨 의미인지. 미혼 여성에게는 결혼이, 기혼 여성에게는 출산이 ‘좋은 소식’이라는 것을. 결혼이나 출산에 부정적인 건 아니지만, 마냥 좋은 소식이라고 포장하기가 종종 껄끄러울 따름이다. 왜냐고? 그 좋은 것을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발표된 통계청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신혼부부(결혼 1년 미만)의 자가 비중이 37.7%로 전세(35.1%)를 앞질렀다.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자가 비중(32.3%)이 전세(44.1%)보다 적었지만, 이제는 주택 구입이 결혼의 전제조건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지난해 혼인 건수는 26만 4500건으로 4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신혼 때는 단칸방 하나만 있어도 행복하다는 건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말이 됐다. 집 없이는 결혼할 엄두조차 못 내는 게 현실이라고 저런 통계가 말해준다. 부모의 도움을 받은 경우라면 그나마 나은 축에 속하고, 대부분 은행 빚을 낸다. 결혼 축의금의 다른 이름은 ‘융자의 노예’에게 주는 위로금일지도 모른다.
 
또 애를 낳으면 행복이 커지는 만큼 근심거리도 불어난다고들 한다. 출산 직후 1년씩이라도 번갈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맞벌이 부부가 얼마나 될까. 말도 못하는 아이를 무작정 어린이집에 맡기고 맘 편한 부모가 어디 있을까. 여러 가지 이유로 또 조부모에게 손을 벌린다.
 
위아래 집에 살면서 평일에 언니네 아이를 봐주고 있는 엄마는 요새 나만 보면 “네 애는 네가 키우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지금도 팔 다리 관절이 아프고 힘에 부치는데 더 나이 들면 정말 자신이 없다는 얘기다. 알겠다고 큰소리치고는 남자친구에게 슬쩍 묻는다. “오빠네 부모님은 아이 봐주실까?”
 
내집 마련, 육아 휴직…. 결혼과 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20~30대 남녀들의 흔한 고민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결혼도 출산도 축하하지 말자는 게 아니다. 당연히 축복받아야 할 일이지만, 그 누구보다 당사자에게 진정으로 ‘좋은 소식’이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좋은 소식 없니?”라는 질문을 받고 만감이 교차하지 않아도 되도록 말이다.
 
김경희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