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출발이나 도착이 늦어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특히 기체 결함, 기상 악화 등이 큰 영향을 주는데요. 여기에 또 하나의 복병이 있습니다. 바로 비행기가 다니는 하늘길의 ‘병목(bottleneck)’ 현상입니다. 마치 도로처럼 하늘길도 특정 구간에 항공편이 몰리면서 정체를 빚는 겁니다. 주변에 병목 구간이 많으면 그만큼 비행기 출발과 도착에 지연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요.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하늘길에도 곳곳에 ‘병목’ 구간
중국, 시간당 7~8대만 통과 허용
공군 훈련 겹치면 1시간 지연도
제주 남단~동남아 항로도 정체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중국 베이징 방면으로 가거나 베이징을 통과해 유럽으로 가는 항로가 대표적인 병목구간입니다. 인천발 유럽행 항공기는 대부분 베이징과 몽골 지역,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항로를 이용하는데요. 이곳은 수용량이 시간당 평균 7~8대에 불과합니다. 중국 관제 당국이 항공기를 7분에서 최대 15분 간격으로 분리하기 때문인데요. 여기에 일본에서 출발한 비행 편까지 몰리면서 혼잡이 더 심합니다. 참고로 일본 방면 항로는 시간당 15대 정도를 수용합니다.
제주 남단을 지나 동남아로 향하는 항로도 만만치 않은 병목 구간입니다. 특히 동남아 운항편이 집중되는 오후 6시~7시 사이가 가장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항로 복선화 등 대책이 추진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천 비행정보구역(FIR), 즉 우리 하늘인데도 중국과 일본이 관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아카라~후쿠에 회랑 항로’ 주변도 우리 비행기들에는 병목 구간으로 통하는데요. 이 구간은 중국과 일본 항공기들이 전용 고도를 사용하면서 우리나라 공항의 출발·도착 편이 영향을 받아 지연되는 사례가 잦다고 합니다. 이 항로는 중국 상하이로 가거나 상하이를 지나 동남아로 가는 데 많이 이용됩니다.
국내 항공사의 대륙별 지연율 가운데 동남아가 7.3%, 서남아 9.0%로 높은 편인 것도 이러한 상황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특히 장거리 구간이 많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적지 않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아시아나항공은 국제선 지연율이 8.4%, 대한항공은 5.8%로 다른 국내 항공사들에 비해 높습니다.
최근에 만난 대한항공의 한 운항 관련 간부는 “우리 자체의 문제로 지연이 되기보다는 하늘길 병목 현상 때문에 지연율이 높아지는 측면이 커서 어떻게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고 하소연하더군요.
결국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인접 국가 간에 적극적인 논의를 통한 새 항로 개설이 무엇보다 필요한데요. 중국, 일본 등 국가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보다 원활한 협조가 이뤄져 하늘길이 좀 더 편하고 빨라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