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마그레테 베스타거 EU 집행위 경쟁담당 위원(우리나라로 치면 공정거래위원장 격)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최근 페이스북, 애플 등 세계 경제를 주름잡던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서 크고작은 문제가 터져나오는 가운데 일찌감치 이들의 불공정행위를 문제삼아온 EU 경쟁당국이 주목받고 있다.
그 중심에 베스타거 위원이 있다.
구글·애플 등 美 테크기업에 사상 최고액 과징금 부과
임기 4년차 덴마크 출신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이 주도
미국·브라질·인도·러시아 등 각국 EU 제재 따라하기
뜨개질하는 '트위터의 여왕'…벌써 5년 연임 자청
지난해 6월 EU는 미국 기업 구글에 24억 유로(약 3조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검색 시장에서 확보한 지배력을 활용해 쇼핑 서비스에서 부당한 이익을 얻었을 뿐 아니라 경쟁사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구글은 세계 최대의 검색 업체다. 그동안 구글의 비즈니스 방식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각국 업체들의 불만이 쏟아졌지만, 어느 나라 경쟁당국도 하지 못한 일이다.
제재를 주도한 이는 베스타거 위원이다.
그의 논리는 단순명쾌했다.
“다른 기업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혁신할 기회를 잃었으므로 구글의 위법성이 인정된다. 무엇보다 유럽 소비자들이 주도적으로 선택할 기회와 혁신의 이익을 누리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EU 차원의 단죄도 그렇지만 그 다음 벌어진 일이 구글을 더 충격에 빠뜨렸다.
베스타거의 발표 이후 같은 해 11월 미국 미주리주 조쉬 홀리 법무장관이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위반 여부를 포함한 조사에 착수한 것. 그는 구글 측에 EU에 제공한 모든 증거의 사본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다른 주의 검찰도 미주리 주와 정보 제공을 논의 중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홀리 장관은 “우리는 유럽의 절차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EU 경쟁 당국은 원래도 전통적인 독점금지법 집행에서 엄격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최근엔 개인정보와 사생활 보호, 디지털 공간에서의 공정 경쟁, 글로벌 기업들의 납세, 증오 및 테러 조장 등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 기업들을 좇고 있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기업들이 고객 데이터나 알고리즘을 남용하는 지도 검증 대상이다.
디지털 경제에서 공정경쟁과 소비자보호를 어떻게 추구할지 막막했던 각국에 EU 경쟁당국이 딱 맞는 ‘롤 모델’인 셈이다.
EU와 달리 인터넷을 엄격하게 규제하지 않던 미국은 뒤늦게 태도를 재고하기 시작했다. 지난 미국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후보 측과 연계됐던 데이터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정보를 부적절하게 보유한 것으로 드러나자 미 연방 정부와 주 당국은 소셜미디어 회사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의회 청문회에 나갈 예정이다.
거리낌없이 잘 나가던 미국 실리콘밸리 회사들로선 뜻밖의 암초를 만난 것이다. 그들은 베스타거가 미국 테크 기업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고 반발한다. 팀 쿡 애플 CEO는 2016년 아일랜드 신문과 인터뷰에서 법인세 감면 특혜 의혹과 관련해 “정치적 허위”라고 반박했다. 애플과 아일랜드는 EU 결정에 대해 항소했고, 퀄컴도 항소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EU를 따르는 국가는 늘어나고 있다. 2010년 EU가 구글 검색 엔진과 안드로이드 모바일 운영 체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자 브라질과 인도, 러시아도 독점 금지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러시아와 인도는 벌금을 부과했고, 브라질도 네 건의 조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또 다른 나라의 독점 감시기관보다 자율권이 강하다. 미국 반독점 기관이 벌금 등의 처벌을 내리려면 법정에 가야 하는 것과 구별된다. 미국과 캐나다는 구글에 대한 조사를 벌금 없이 종료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선임경쟁 전문가 안토니오 카포비앙코는 “유럽의 시스템은 더 넓은 재량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많은 국가가 미국보다 유럽을 모델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고 소개했다.
베스타거는 이런 권한을 이용해 인터넷 시대의 문제점을 다루는 데까지 경쟁법을 확장했다. 미국이 디지털 플랫폼의 혁신 장려에 무게를 두고 기업에 대한 조치에 소극적인 것과 대조적이다.
2015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웹사이트 리코드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테크 기업에 대한 EU의 조사에 대해 “미국 기업들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유럽의 서비스 제공 업체들이 미국 기업들에 장애물을 치고 있다”고 분통을 떠뜨렸다.
하지만 EU 관계자들은 미국 기업만을 겨냥한 게 아니며, 유럽 소비자 5억 명에게 접근하려면 유럽 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정경쟁에 대한 베스타거의 확신은 확고하다.
“법이 실제로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아무리 작은 선수라도 거대 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베스타거는 경쟁당국의 사령관으로서는 철의 여인이지만, 일상은 탈권위적이고 대중에 친숙하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직접 구은 시나몬 롤을 나눠주기도 하고, 올 초에는 공항에서 뜨개질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규제의 필요성을 설명할 때도 전문 용어 대신 평범한 언어로 강조점을 잘 전달한다는 평을 받는다.
그같은 가정 환경은 불공정 행위를 일삼는 거대기업에 대한 그의 단호함과 엄격함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인식은 “(경쟁과 관련한)이런 문제는 아담과 이브만큼 오래됐다. 모든 것은 탐욕 때문에 이뤄진다”라는 언급에서 잘 드러난다.
코펜하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29살에 정계에 발을 디뎠다. 2011년 중도 정당의 대표가 돼 연립 정부 구성에 참여했다. 이후 EU 최고 집행기관인 EU집행위에 덴마크 대표로 참여했다. 소셜미디어를 오래전부터 사용해와 덴마크에서 ‘트위터의 여왕‘으로 불린다.
베스타거는 구글 등에 대해 초유의 과징금을 부과한 이후 미국 변호사협회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필요하면 법정에 나가 기업들과 대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이 글로벌화하면서 사회가 법 집행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공정하고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디지털 세상을 주도하는 거대 테크 기업에 창끝을 겨누고 있는 여전사 베스타거는 최근 인공지능(AI)이 경쟁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조언해줄 교수 세 명을 임명했다. 각국 규제 당국과 거대 기업들이 다시금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