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는 6일 대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강요 및 정유라 승마 지원 등 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18개 혐의(뇌물수수·직권남용 등) 중 16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을 모두 부인하면서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대통령이 이 나라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불행한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에게 중형이 선고된 것은 최씨와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데다 형량이 무거운 뇌물 혐의 중 상당수가 유죄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총 18개의 혐의 중에서 박 전 대통령의 단독 혐의는 없었다. ‘공범’ 최씨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건 연루자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종국엔 ‘정점’인 박 전 대통령에게 연결되는 구조였다.
그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혐의 14개가 최씨와 겹쳤다. 이날 선고 때 재판부가 ‘최서원(최순실의 개명후 이름)’을 총 170차례나 언급한 것도 그래서였다.
최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동일 재판부가 내린 이날 박 전 대통령 판결은 당초 예상대로 ‘데칼코마니’가 됐다. 재판부는 “이런 사태의 주된 책임은 헌법상 부여된 책무를 방기하고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위와 권한을 사인에게 나누어 준 피고인과 이를 이용해 국정을 농단, 사익을 추구한 최씨에게 있다”고 판단했다. 최씨가 유죄를 선고받은 12개 혐의가 박 전 대통령 재판에서도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이면 징역 10년 이상,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될 수 있다.
재판부는 삼성이 최씨의 딸 정유라(22)씨에게 승마 지원(72억원)을 하게 한 혐의에 대해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광범위하고 막강한 권한이 작용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또 롯데가 K스포츠재단에 지원금(70억원, 이후 반환)을 내도록 한 혐의, SK그룹에 재단에 89억원을 내라고 요구한 혐의에 대해서도 “면세점 특허 등 그룹 현안 등에 대한 도움을 대가로 지원을 요구했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나머지 두 개 뇌물 혐의는 최씨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선고됐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을 목적으로 동계영재센터에 16억원을 지원하고 미르ㆍ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냈다는 혐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경영권 승계의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고, 승계작업에 대한 ‘명시적·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앞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의 항소심 판결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데 대해선 두 재판부의 인식이 동일했다. 하지만 삼성이 최씨측에 지원한 말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었느냐를 놓고는 판단이 엇갈렸다. 이 부회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부는 말 소유권이 삼성 측에 있다고 봤으나 이번 재판부는 최씨에게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명마 세필의 가격과 보험료(약 36억원)를 박 전 대통령이 받은 뇌물로 인정하면서 “최씨가 말에 대한 실질적인 처분권한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물론 이 전 부회장의 최종 형량을 가를 수 있는 말 소유권에 대한 최종 판단은 향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의 대법원에서 나올 전망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