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변호인' 유영하 "정치재판 잔인...반드시 돌려받을 것"

중앙일보

입력 2018.04.06 10:49

수정 2018.04.0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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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과 유영하 변호사(왼쪽).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은 6일 1심 판결이 나기까지 ‘재판 보이콧’을 해왔다. 지난해 10월 16일 자신의 구속 기간이 연장 결정된 이후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는 의미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서다. 이 날을 기점으로 유영하 변호사 등 변호인단도 전부 사임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세상과 닿을 수 있게 해주는 거의 유일한 끈이었고, 사실상 마지막 남은 ‘친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 변호사는 지난 1월 2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은 경위야 어찌됐든 최순실씨 사건으로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상처를 준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도 “탄핵으로 이미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을 다시 숨통까지 끊어놓겠다는 건 너무 잔인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유일한 대변인 격인 유 변호사가 언론 인터뷰를 한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에게 속은 것을 뒤늦게 알고 크게 후회하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ㆍ경찰ㆍ민정수석 등으로부터 최씨에 대한 보고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아무도 최씨에 대해 보고가 없었는지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도 군포시에서 열린 거리유세에 동행한 유영하 변호사.

 
또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은 최씨가 자신에게 한 번도 삼성으로부터 말 등을 지원받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없고, 본인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게 정유라씨나 최씨를 지원해달라고 한 적이 없으며, 안종범 경제수석에게 재단을 만들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는 세 가지 입장이 확고하다”고 전했다.  


다음은 당시 인터뷰의 주요 일문일답.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건 언제쯤인가.
2016년 9월께 ‘비덱’ 문제가 터졌을 때 박 전 대통령이 독일에 있던 최순실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물었더니 대뜸 최순실이 ‘비덱이 뭐예요’라며 잡아뗐다고 한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은 한때 언론에서 없는 일을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삼성 문제 등이 본격적으로 터지면서 박 전 대통령이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정호성 전 비서관이 최순실씨에게 연설문을 스크린해 달라고 한 건 뭔가.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 반짝 하는 건 있다’고 하더라. 대선 때도 용어 선택할 때도 톡톡 튀는 말을 잘 찾아냈다고 했다. 그런 차원에서 정 전 비서관이 물어 보려고 했던 것 같다.
 
만에 하나 최씨 국정농단을 몰랐더라도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있는거 아닌가. 박 전 대통령 지지층까지 실망했기 때문에 탄핵까지 간 거 아닌가.
인정한다. 그에 대해선 박 전 대통령 스스로 과거 대국민 담화에서 모든 게 자기 책임이고 불찰이라고 밝혔고 국민들에게 큰 상처 드린 점에 대해 사죄했다. 지금도 그 부분은 똑같은 심경이다. 최순실 문제 때문에 정치적 책임을 지고 탄핵까지 당했다. 하지만 법적 책임은 다르다. 철저히 법리적 팩트만 가려서 재판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미 결론 내려놓고 요식절차만 밟는 정치재판이다. 왜 이렇게 잔인하냐(어조가 높아지며). 이미 정치적으로 죽은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느냐. 그러면 반드시 되돌려받게 돼 있다.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5월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했다. 이날 재판에는 함께 기소된 최순실도 피고인석에 앉아있다. [중앙포토]

 
박 전 대통령의 재판 거부가 전직 대통령 답지 않은 처신이란 지적이 있다.
나는 법원이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벗어나서 팩트에 입각한 판결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래서 시간 끌 필요 없이 빨리 재판하자고 해서 주4회 재판도 받아준 거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하는 걸 보고 모든 기대를 접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서 영장을 발부한다는데 이미 중요 관련자들 증언이 다 끝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증거를 인멸한다는 거냐. 왜 법원이 당당하게 불구속수사 원칙을 못 지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박 전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재판을 계속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보고 변호인단에게 통보를 한 것 같다.”    
 
블랙리스트 문제에 대한 입장은 뭔가.
박 전 대통령에게 ‘블랙리스트’에 관한 보고서를 받으셨느냐고 물어보니 ‘저한테 보고서를 냈다고 하면 제가 읽어봤을 거예요’라고 했다. 본인은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1급 공무원 바꿨다고 직권남용이라고 하면 앞으로 정권 바뀔 때마다 사표는 어떻게 받느냐. 또 대통령에게 보고한 건 모조리 대통령이 포괄적으로 지시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앞으로 대통령은 모든 범죄에 다 연루된다는 얘기다. 어느 정부인들 무사하겠느냐. 
 

박근혜 전 대통령 [뉴스1]

 
수감 생활을 힘들어 하나.
매트리스에서 자는데 허리가 아파서 밤에 한두 시간마다 잠을 깬다고 한다. 통증이 가실 때까지 서 있다가 다시 잤다가 또 깨고 한단다. 내가 허리 때문에 구치소 측에 침대를 넣어 달라고 했는데 특혜라고 안 된단다. 병사(病舍)에 갈 수 없으니 대신 침대 좀 놔달라는 게 왜 특혜냐. 식사도 짠 음식이 많아 김치를 물로 씻어서 조금 먹는 정도라고 한다. 구치소 측에 물어보니 매번 3분의 1 정도밖에 못 드신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이 사람들을 안 만나는 이유는.
일반인 접견은 구치소 측에서 대화를 기록하기 때문에 편하게 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변호인 접견실도 크게 말하면 밖에 다 들리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이 수시로 나보고 목소리 낮추라고 한다. 또 변호인에게야 어쩔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옷 갈아입은 지금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생각도 있는 것 같다.
 
정치권에선 박 전 대통령이 끝까지 탄핵심판으로 가지 말고 차라리 자진 하야를 했으면 구속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자진하야를 했어도 결과는 지금과 똑같았다고 본다.    
 
유 변호사가 박 전 대통령을 면담할 때 “나오시면 주문진에서 펄떡펄떡 뛰는 회를 모시겠습니다”고 희망적인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아휴 그런 날이 오겠어요”라며 씁쓸해했다고 한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