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죽고, 인도네시아에서 시집온 며느리(체리쉬 마닝앗 분)는 집 나가 소식 끊긴 지 1년째란 설정. 여기엔 감춰진 사연이 있다. 그러나 인종차별, 불법 브로커 등 울리려고 작정한 듯한 자극적 소재는 일절 배제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난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신인 방수인(37) 감독이 8년간 전국에서 취재한 실제 가정들 사례가 바탕이다. 여든셋 배우 이순재가 초짜 감독의 순제작비 5억원 저예산 데뷔작에 출연료 없이 주연으로 나선 것도 “참 소박하면서도 진솔한 시나리오” 때문이다.
‘덕구’로 데뷔한 방수인 감독
손주 둘 돌보는 70세 노인 여정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 일깨워
우리 사회 이주민 문제도 다뤄
일곱 살 덕구(정지훈 분)는 ‘할배’ 잔소리에 툴툴대면서도 조상님 이름을 줄줄 외고, 두 살 어린 여동생 덕희(박지윤 분)를 의젓하게 보살핀다. 하나에 300원씩 쳐주는 고깃집 불판 설거지로 손주들 과잣값을 버는 ‘덕구할배’의 내리사랑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저리다. 시시각각 닥쳐오는 시련을 덜어주는 건 동네 이웃들의 따뜻한 정이다.
- 어쩌면 나쁜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오나.
- “초반에 쓴 버전에는 있었는데 덜어냈다. 제가 취재한 사람 중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었다. 철저히 보고 겪은 제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고쳐 나갔다.”
- 다문화 가정으로 설정했는데.
- “대학 때 학교 앞 중국집에서 일하는 동갑내기 필리핀 친구를 통해 이주민 노동자들과 친하게 지냈다. 꿈이 영화감독이랬더니, 그 친구들은 한국에서 일하며 좋은 사람 만나 정착하는 게 꿈이라더라. 우리나라처럼 유교가 뿌리 깊고 한민족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친구들이 잘 지낼까 생각이 났다. 한국인 남편을 일찍 여읜 이주민 여성이 홍동백서 다 무시하고 정성으로 차린 제사상도 기억에 남고. 그런 친구들과 2세 아이들에게 ‘너희는 다르지 않다. 너희는 우리’라고 들려주고 싶었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호흡은 몰입감을 더했다. 방 감독은 “아역들에게 ‘네가 없으면 할아버지는 이 길을 쓸쓸히 혼자 걷겠지? 밥은 누구랑 드실까?’ 하며 상대 입장을 설명해줬을 때 더 좋은 연기가 나오더라”며 “어른보다 배려심이 크다고 느꼈다”고 했다. 또 “이순재 선생님은 제가 쓰면서 상상한 대사나 표정 이상의 큰 생명력을 불어넣어주셨다”며 “특히 엔딩신은 편집하며 수십, 수백 번을 봐도 계속 눈물이 났다”고 했다.
“‘덕구’ 만들며 내리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선생님이 덕희를 안고 촬영하다 넘어져 다치셨을 땐 제가 무슨 짓을 했나 머리가 하얘졌죠. 괜찮다 하시는데 너무 죄송해 많이 울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영화에 뿌리가 되어준 존재로 돌아가신 외조부모를 돌이켰다. “어릴 적 삶과 죽음을 처음 알려주신 분들이에요. 외할아버지 한의원 병풍 뒤에서 곧잘 놀았는데, 치료를 받으러 온 손님들이 외할머니 한복집에서 수의를 지어가곤 했어요. 사람은 왜 죽음을 생각하면서 삶을 연장하려 할까. 어쩌면 ‘덕구’의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영화에 생전 에피소드를 반영한 것도 있어요. 엄마가 영화 보면 많이 우실 것 같아요.”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