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연남동 경의선 숲길공원.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를 본떠 ‘연트럴파크’로 알려진 이 공원 양편은 홍대 앞 못지않은 유흥가가 펼쳐진다. 여기에도 일본풍 가게가 즐비하다. 특히 연트럴파크 중간 지점에서 오른편으로 꺾어지는 동교로 안쪽 주택가에는 최근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등 일본 음식점이 급증하고 있다.
한국서 거센 ‘일본 바람’
홍대 동교로 ‘한 집 건너 이자카야’
강남역 주변 일본 가정식집 대기 줄
사케 수입 10년 새 3배 가까이 증가
감성 중시 젊은 층, 일본 문화 관심
‘일본 음식은 비싸다’는 편견도 깨지고 있다. 젊은 층이 주로 찾는 도심의 중심가에는 전통 스시뿐 아니라 이자카야, 일본 가정식, 일본 우동·카레 전문점 등 일본 거리나 가정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일식집들이 경쟁하듯 들어서고 있다.
서울 강남역 주변 중 20대들이 가장 몰리는 강남 CGV 주변에는 최근 1인당 1만원 안팎의 메뉴가 주종인 캐주얼 일식집이 뜨고 있다. 일본 가정식을 파는 ‘토끼정’의 경우 오후 5시면 식당에 들어가기 위한 20대들의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다.
남일수 토끼정 대표는 “일본에 갔다 온 젊은 층이 일본 현지에서 먹어 본 경험을 떠올려 일본 가정식이나 전골 요리 등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역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A씨는 “강남역 주변 식당은 워낙 비싼 임대료를 버티지 못하고 불과 몇 개월 만에 폐업하는 경우도 수두룩하지만 유독 일본 식당만은 번창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세청 무역통계에도 한국의 ‘일본 소비’ 붐을 읽을 수 있다. 2008년 6119t 이던 일본 사케(정종) 수입량은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1만6119t까지 2.6배 증가했다. 일본 맥주 수입은 더 큰 폭으로 늘었다. 2008년 7324t이던 수입량은 지난해 7만1410t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이버 세상에도 일본 문화가 넘쳐난다.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블로그에는 일본과 관련된 블로그 개수만 6만7000건, 일본 관련 게시글로 따지면 1300만 건을 훌쩍 넘어선다.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유학·여행 정보뿐 아니라 일본 정착기와 문화 소개, 일본 제품 구매 대행, 음악·패션·프로야구·등산·그릇 등 상상할 수 있는 대부분의 주제가 다 있다. 주종혁 네이버 블로그 팀장은 “지난 5년간 일본 관련 콘텐트가 매년 30만여 개 이상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간 정치·외교적 관계 냉각에도 한국 사회에서 일류 붐이 이는 이유가 뭘까. 전문가들은 엔저 현상이 계속되면서 부담 없이 일본을 접할 기회가 많아진 것을 첫째로 꼽는다. 또 최근 들어 일본 사회 속에 한류가 본격적으로 녹아 들어가는 걸 보면서 일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같이 늘어난 것도 원인으로 진단된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기본적으로 일본 문화는 내공이 있고 우리가 여전히 쫓아가는 상황이라 일본 문화 소비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경쟁·출세와 같은 주류 가치관보다는 자신만의 취향과 소소한 일상을 중시하고 감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런 걸 채워주는 일본 콘텐트가 새롭게 소비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함종선·김영주·강나현 기자 joo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