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또 '발렌시아가'부터다. 지난해 '트리플s'로 투박한 어글리 슈즈 트렌드를 만들어 내더니 이번엔 양말을 닮은 삭스 스니커즈 '스피드 러너' '스피드 트레이너'로 다시 한번 히트작을 냈다. 2017 리조트 컬렉션에서 처음 선보인 이 신발은 심지어 런웨이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다.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에 상품이 나온 것을 보고 소비자들이 '알아서' 열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편집매장 10꼬르소 꼬모의 남호성 과장은 "삭스 스니커즈의 시작은 발렌시아가의 스피드 러너였다"며 "아직도 대기 리스트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특이한 모양에 처음엔 "이상하다"고 평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올해는 많은 럭셔리 브랜드부터 아디다스 등 스포츠 브랜드까지 삭스 스니커즈를 속속 출시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발목 부분에 작은 글씨로 브랜드 명을 새긴 삭스 스니커즈를 선보였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 즈발리아의 디자인 철학과 결을 같이하는 브랜드 '베트멍'은 아예 스포츠 양말을 그대로 본딴 디자인에 신발 좌우를 표시하는 'right(오른쪽)' 'left(왼쪽)' 글씨를 새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발렌티노'는 지난해 락스터드를 장식한 삭스 스니커즈에 이어 올해는 발등에 특이한 모양의 구멍이 뚫린 부츠 스타일의 모델을 내놨고, '펜디'는 지난해 처음 삭스 스니커즈를 내놓은 후 올해는 여기에 더해 매쉬 소재의 스타킹을 신은 것 같은 모양의 부츠를 내놔 눈길을 끌었다.
발렌시아가부터 아디다스까지
착용감 편하고 세련된 디자인
명품 브랜드의 '애슬 럭셔리' 인기
2012년 나이키는 '플라이니트'라는 신소재를 개발해 한 줄의 실로 짠 니트 형식의 갑피를 가진 운동화를 출시했다. 플라이니트 루나 시리즈를 시작으로 발목까지 올라오는 양말이 신발에 붙어 있는 디자인의 '나이키 에어 프레스토 울트라 플라이니트' 등을 내놨다.
지난 3월 처음 삭스 스타일의 러닝화 '퓨즈토라'를 내놓은 아식스의 이강은 마케팅팀 과장은 "쿠셔닝, 경량성 등 운동화가 가지는 기본 기능에 신고 벗기 쉬운 편이성까지 갖췄고 여기에 애슬레저룩이 강세인 요즘 패션 트렌드에도 부합해 고객의 선호도가 높다"고 말했다.
삭스 스니커즈의 인기에 스니커즈와 같은 브랜드의 양말을 함께 신어 그 모습을 흉내 내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올봄 새로 출시한 프라다의 스니커즈 '클라우드 버스트'와 프라다 로고가 새겨진 양말을 함께 신는 경우다.
패션잡지 아레나의 성범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삭스 스니커즈의 인기를 "최근 패션계를 주도하고 있는 '애슬 럭셔리'의 영향"이라고 했다. 애슬 럭셔리란 애슬레저와 럭셔리를 합친 말로, 럭셔리 브랜드에서 스포츠 웨어를 재해석해 선보이면서 나타난 트렌드다. 스포츠 브랜드가 만들어낸 신소재와 기술을 사용하되 브랜드 DNA에 맞게 디자인에 변화를 주다 보니 나타난 신발이란 설명이다. 남호성 10 꼬르소 꼬모 과장은 "(삭스 스니커즈는)처음엔 리미티드 스니커즈에 열광하는 20~30대 남성들에게 관심을 받았다면 이젠 성별·나이 상관없이 패션에 관심 많은 사람에게 폭넓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각 브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