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타이어 운명의 날...노조 설득 위해 금융위원장ㆍ산은 회장 광주 집결

중앙일보

입력 2018.03.3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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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관리 신청서류 준비됐다”(30일 오전, 한용성 금호타이어 사장)
“노사간 합의 없으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30일 오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노조 동의 없으면 법정관리로 가는 것 외 방법 없다”(29일, 최종구 금융위원장)
“30일 지나면 법정관리, 청와대도 못 막는다”(28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30일이다. 금호타이어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이다. 이날은 채권단 자율협약 종료일이다. 금호타이어 노조가 해외매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채권단은 금호타이어에서 손을 뗀다.  
 
이날 오전 열린 주주총회에서 한용성 금호타이어 사장은 “법정관리 신청 서류는 이미 준비된 상태로 노조가 동의하지 않을 경우 (4월) 2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법정관리 신청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합의 없으면 4월 2일 법정관리 신청”

지난 24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금호타이어 해외 매각 철회 1차 범시도민대회’에 참가한 한 금호타이어 노조 조합원이 ‘해외 매각 철회하라’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금호타이어는 4월 2일 270억원의 어음이 만기된다. 회사에 현금이 없어 직원들 월급도 3개월 넘게 밀린 상태다. 현실적으로 270억원의 어음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 이날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회사 입장에서는 남은 자산이라도 건지기 위해 채권 추심이 중단되는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의 이동걸 회장이 긴급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로의 금호타이어 매각을 발표한 게 지난 2일이다. 인수합병(M&A) 절차가 마무리되기 전에 이례적으로 매각 협상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매각의 선결 조건인 금호타이어 노조의 합의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이날(30일)까지를 노사 자구안 제출의 데드라인으로 삼고 이때까지 노조가 합의하지 않으면 금호타이어는 법정관리에 들어간다고 경고했다. 추가 지원은 없다고 단언했다. 채권단 입장에선 외통수를 노조에 던진 셈이다.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현 노조 간부 3명이 광주 송전탑에 올라 ‘해외매각 반대’를 외치며 12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다. 노조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이동걸 회장이 임금 삭감을 포함하는 노사 자구안을 내면 회사를 정상화시킨 뒤 국내 기업에 팔기로 약속했다”며 “공개 매각도 아니고 수의 계역으로 일방적으로 중국 기업을 선정한 뒤, 노조 합의 안 해 주면 법정관리 보낸다고 협박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그는 “회사 부실의 원인이 중국 공장 때문이라는데 그걸 왜 광주의 노동자가 책임져야 하느냐”고 강조했다.
 
노조가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30일까지 버티기에 나선 것은 이날을 넘겨도 법정관리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다. 믿음의 근거는 두 가지다.
 
노조 “국내 인수 기업 있다” vs 채권단 “해외매각 외 대안 없다”
먼저, 해외매각 말고 국내 기업 인수라는 대안이 있다. 노조 측은 지난 24일 2차 총파업 때 “인수에 관심이 있는 국내 기업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지역 정치인의 발언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 기업이 어디냐에 대해서 노조는 실체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채권단과 정부가 압박하고 있는데 보복이 두려워 국내 기업이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노조가 국내 인수 희망 기업의 존재에 대해 언급한 이후 30일까지 여러 업체의 존재가 부각되기는 했다. 지난 27일엔 국내 타이어 유통 전문기업은 타이어뱅크가 인수 참여 의사를 밝혔다.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금호타이어가 중국 더불스타에 통째로 매각되는 것을 국내 기업으로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전국 판매망을 갖춘 타이어뱅크는 금호타이어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회사”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수 여력에 대해서는 채권단을 포함해 노조까지 의문을 제기한다. 2016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타이어뱅크의 총 자산은 3640억원에 불과하다.
 
지난 28일 밤엔 미국 소재 S2C캐피탈그룹의 한국 매니저로 자칭하는 이들이 산은에 금호타이어 앞 필요자금 6억 달러를 투자할 수 있다는 내용의 팩스를 보냈다. 하지만 인수의향서라고 하기엔 문서가 너무 조악한 데다, 금호타이어 주식 수를 잘못 계산하는 등 문서가 너무 허술했다. 또 한국 매니저로 자칭하는 이들이 노조와 관련된 인사이거나 전임 노조 집행부로 드러나 노조가 자작극을 벌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데드라인인 30일 오전에는 금호석유화학의 인수전 참여가 갑자기 시장에 돌았다. 발단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이날 아침 발언이다. 금호석화의 금호타이어 인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회장은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답했다. 금호석화는 박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회장이 이끌고 있다. 같은 뿌리였으나 ‘형제의 난’을 거치면서 갈라섰다. 금호석화는 금호타이어 인수 잠재대상 후보군으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회사다. 박삼구 회장의 강력한 반발에 그간 금호석화가 나서지 못했는데, 박삼구 회장이 금호석화의 인수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금호석화가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왔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그러나 “이미 채권단과 노조가 벼랑 끝까지 대치하는 마당에 우리가 어떻게 이 판에 뛰어들 수 있겠느냐”며 “노조가 말한 기업도 우리는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노조 “선거가 코앞” vs 채권단 “청와대도 못 막는다”
노조가 버티는 두 번째 이유는 과거의 ‘버티기’ 경험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이 수천 수만명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법정관리라는 선택을 할 리 없다는 자신감이다. 지방선거가 코 앞인데 지역 여론을 뒤흔드는 결정을 시장 논리로만 할 수는 없다고 확신한다. 좀비 기업 살리기라는 비판에도 8조원 넘게 쏟아부으며 조선업을 끌고 오다, 최근에서야 성동조선 한 곳이 법정관리 수순에 들어갔다. 덩치 큰 대우조선해양은 전 정권에서 ‘서별관회의’로 통칭 되는 밀실 회의를 거치며 5조8000억원의 공적 자금이 투여됐다. 금호타이어는 이에 비하면 훨씬 적은 돈으로도 회생이 가능하다는 게 노조 측의 판단이다.
 
그러나 채권단이나 정부 당국이 ‘이번에는 다르다’는 시그널을 계속 보내고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더 이상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안 된다”며 “해외매각이 불발되면 금호타이어가 살아날 길은 없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 기대는 노조를 향해 이 회장은 “청와대도 법정관리 못 막는다”고 말했다. 노조는 정부는 산은 뒤에서 뒷짐 지고 뭐하냐는 비판에 데드라인인 30일 오전 기획재정부 등 관계기관은 일제히 노조에 합의를 촉구했다.
 
그러나 노조의 태도는 강경하다. 30일 오전 6시 30분부터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오후 2시에는 총파업 궐기대회를 연다. 금호타이어 운명이 결정되는 시간이 반나절도 안 남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금호타이어 매각과 관련한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종구 금융위원장,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 부총리,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동걸 산업은행장. [뉴스1]

마지막까지 희망의 끈이라면 30일이 금요일이라는 점이다. 한용성 금호타이어 사장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채권단 등이 영업일 기준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토, 일요일이 남아 있다”며 “주말 동안이라도 노조가 극적으로 협의를 해줘 기적적으로 회사가 살아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장인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은 전날 이미 광주로 내려가 노조 집행부와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은 회장도 이날 오후 광주로 내려간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