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박훈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런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박 변호사는 고(故) 김광석씨의 아내 서해순씨,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모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변호를 맡았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왜 난데없이 배우 곽도원씨와 설전을 주고받은 걸까.
사건은 곽씨의 소속사 대표인 임사라 변호사가 25일에 올린 글이 발단이었다. 임 변호사는 글에서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씨 피해자(17명) 중 일부가 연희단 선배인 곽씨를 만나 ‘요새 잘 나가지 않느냐’며 돈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그 만남 이후 피해자들이 전화로 ‘협박성 발언’까지 했다고 적었고 ‘꽃뱀’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윤택씨에 대한 미투운동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렇게 흘러가는 게 정상일까.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진실 규명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진실규명의 방법이 내기이며, 결백을 자신하는 기준이 수억 원씩 올리는 판돈이라면 미투운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배가 갑자기 산으로 가는 격이다.
미투는 돈과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시민의 문제의식에서 촉발됐다. 그런데 그 미투를 두고 아무리 홧김이라지만 판돈을 걸고 내기를 하자니 엇나가도 한참 엇나갔다. 이런 발상 자체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미투의 본질이 흐려지고 왜곡된다.
곽씨와 박 변호사 간의 설전 글은 29일 오후 삭제된 상태였다. 하지만 볼 사람은 이미 다 본 뒤였다. 두 사람 모두 미투운동을 지지한다고 말해왔다. 그 신념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다면 미투를 시정의 도박판으로 만들지는 말아야 했다.
조한대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