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총장 재직 시절 테뉴어(종신재직권) 심사 강화, 100% 영어 강의, 무시험 입학전형 도입 등 파격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급진적이었다’는 비판론과 ‘정체한 교육계를 혁신했다’는 긍정론이 공존했다. 다만 사임 당시 논란이 된 특허 도용 등 쏟아지던 의혹은 대부분 무혐의로 결론났다.
서남표 전 한국과학기술원 총장
지자체 주도 교육 시스템 필요
하향 평준화로는 인재 못 키워
문재인 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인 ‘공공성 강화’에 대해 그는 “교육 제도는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지만, 적어도 대학 교육 제도만큼은 경쟁이 필요하다”며 “치열한 경쟁 체계를 도입해야 미국 하버드대·MIT·스탠퍼드대 등 글로벌 선도 대학처럼 한국 대학도 국가의 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 교육 시스템에 경쟁 체계와 접목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학이 글로벌 대학과 경쟁하도록 놔두는 대신 결과를 책임지게 하면, 결국 경쟁력 있는 대학만 살아남는다는 지론이다.
문제는 정부의 간섭이다. 그 역시 2013년 “교육부로부터 압력을 받고 KAIST 총장직에서 물러났다”고 주장했다. 이를 의식한 듯 그는 “정부가 대학 교육에 간섭하지 못하는 시스템을 확립해야 글로벌 대학을 육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부가 한국 대학을 좌지우지하는 배경에는 ‘돈’이 있다고 했다. 대학 재정에서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대학 이사회가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 대학의 가장 큰 문제점인 정부 간섭을 벗어나려면, 대학이 재정을 확보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정부가 교육에 크게 관여하는 유럽 국가는 갈수록 대학 경쟁력이 하락하는 반면, 하버드대(36조원)·MIT(12조원) 등 재정적으로 정부 의존도가 낮은 미국 대학은 경쟁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학교육뿐만 아니라 중등교육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공공성’을 강조한다.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운영하던 방과 후 학내 영어수업 폐지 정책이 대표적이다. 서 전 총장은 이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교육하자는 생각은 무리가 있다”며 “일률적 기준으로 하향 평준화를 지향하는 정책을 시행한다면, 한국은 훌륭한 인재를 키우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대안은 미국식 교육 제도다. 서 전 총장에 따르면 미국은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지자체가 이런 권한을 확보한 건 지방세를 중등교육 재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2조586억원의 재원이 필요한 누리과정(만 3세~5세 무상보육)을 전액 국고 지원하기로 했다.
그는 “소수의 공무원이 생각한 정책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다양한 지자체가 자신들의 환경에 적합한 교육제도를 고민하고 적용하면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성공한 정책과 실패한 정책이 극명히 대비된다. 궁극적으로 실패한 지자체가 성공한 지자체의 교육 제도를 벤치마킹하면 결국 교육 시스템이 개선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또 “맹자의 어머니는 세 번이나 이사하면서 아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장소를 직접 선택했다”며 “한국도 자율적 교육 제도를 허락해야 맹모가 삼천지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맹자(인재)를 키우려면 교육 시스템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 제도를 운용해야 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서 전 총장은 “정권이 바뀐다고 대입수능시험 등 교육 정책이 달라지는 건 문제가 있다”며 “20년 이상 장기적인 관점에서 교육 제도를 수립하라”고 주문했다.
대전=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