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226명 퇴출 놓고 갑론을박 현장
채용 비리는 헌법에 있는 평등 원칙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범죄다. 채용 비리가 한국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근본부터 무너뜨리고 있다. 능력에 따라 뽑아야 할 인재를 권력·돈·지연·혈연 등 뒷배가 좌지우지했다. 사회 진출의 첫 출발에서부터 기회가 균등하지 못한데, 이후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울 수 없을 것이다.
[논설위원이 간다] 장세정의 사사건건
최대·최악 채용비리 강원랜드
점수조작 226명 퇴출 초읽기
"하이닉스 대신 면접 보고 탈락"
부부딜러 "퇴출되면 파산 불가피"
국회의원·검찰간부 외압 수사중
헌법위반 '비리 몸통' 엄단해야
강원랜드는 30일까지 당사자들에게 소명 기회를 주고 명확한 구제 사유가 없을 경우 31일자로 전원 입사취소 조치할 예정이다.
미세먼지가 짙게 낀 날 동서울터미널에서 강원도 정선행 시외버스에 처음 몸을 실었다. 백두대간의 깊고 깊은 산속에 숨어 있을 것이라 예상했던 강원랜드는 불과 2시간 30분 거리였다.
강원도 정선·태백·영월·삼척 등 4개 폐광지역 일대에서는 지금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동네 망신시킨 채용 비리를 예외 없이 엄단하라"는 원칙론이 우세했지만, "5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 왜 들쑤시느냐"는 현실론도 들렸다.
사북읍에서 식당을 하는 J모(54·여)씨는 "탄광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공동추진위원회(당시 위원장이 강원랜드 사외이사)' 관계자에게 '아들(30) 좀 잘 부탁한다'고 말한 게 전부일 뿐 점수조작까지 청탁한 일은 없다. 점수가 안되면 처음부터 뽑지 말지 입사한 지 5년이나 지나 이제 와서 나가라고 하면 우리 아들 인생은 어떻게 하느냐"며 울먹였다.
인천 출신인 B씨(30·여)씨는 "드라마 '올인'을 보면서 카지노 딜러 송혜교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 부정청탁 없이 입사했다"며 "억대 연봉을 받고 고급 차를 몰고 다니는 '신의 직장'으로 잘못 알려져 속상했는데 이번에 채용 비리자로 낙인까지 찍혀 소송이라도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인사청탁 브로커에게 2000만~3000만원이 오갔다는 소문을 모두 부인했다.
과장급 직원 C씨는 "점수조작 입사자 일부는 벤츠·아우디·BMW를 몰고 다니며 '나는 아무개 빽(배경)으로 들어왔으니 건드리지 말라'며 안하무인 식으로 처신한 경우가 적지 않아 자업자득이란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홍명수 노조위원장은 "채용비리 자체를 옹호해 줄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처리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인정할 수 있도록 분명한 비리 근거를 제시하고 퇴출 조치도 절차에 따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북읍에서 만난 70대 노모는 기자에게 "아들(32)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차례 탈락한 뒤 스키장에서 알바하는데 눈이 녹으면 또 실업자 신세가 될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서울 거주 탈락 여성의 어머니는 "딜러가 꿈이었던 딸이 2013년 SK하이닉스 면접을 포기하고 강원랜드 면접을 봤는데 떨어져 충격을 받았다. 대규모 취업 비리가 드러나면서 돈도 배경도 없어 탈락했나 싶어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폐광지역 출신의 탈락자 아들을 둔 부모는 "불합격 통보를 받고 좌절한 아들은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며 중국으로 떠나 5년간 알바로 전전하고 있다"면서 "청탁할 돈도 빽도 없는 흙수저 부모 때문에 아들이 탈락해 밤마다 눈물을 흘린다. 이번에 피해자 구제할 때도 빽이 있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서울에서 강원랜드에 관광온 30대 커플은 현지에서 기자를 만나 "민간기업에도 부정 채용이 만연해 있지만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의 채용비리를 더 엄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약 복용자보다 마약을 몰래 유통한 업자를 더 엄벌하는 것처럼 청탁을 받고 영향력을 행사한 몸통을 철저하게 찾아내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소장을 보면 2013년 부정청탁자 30여명 중 최흥집 당시 사장이 무려 112명을 청탁했던데.
=내가 감사원에서 29년간 공직 비리를 조사했는데 기관장이 이 정도 대규모로 공적 인사권을 사적으로 악용해 채용 비리를 저지른 것은 처음 본다. 심지어 세금 3500만원을 들인 인·적성 검사를 전형에 반영하지도 않고 점수를 조작했다.
=공소장에 청탁한 사실이 담겨있고, 점수조작이 실제로 이뤄져 합격까지 했다. (226명은) 성공한 불법청탁이라고 봐야 한다. 구체적 금품 수수 여부는 검찰이 밝혀야 할 문제다.
=1차 시험 합격선 아래라면 구제가 어렵다. 피해자라는 사실이 특정되면 최대한 이른 시간에 구제할 것이다.
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여·39)는 지난해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과정에서 검찰 고위 간부 등의 외압이 있었다고 지난 2월 폭로했다. 안 검사는 "지난해 4월 당시 최종원 춘천지검장(현 서울남부지검장·52)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59)을 만난 직후 최흥집 강원랜드 전 사장을 불구속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외압 의혹을 받는 권성동·염동열 의원도 수사대상이다.
여검사의 용기 있는 고발이 채용 비리의 실체적 진실 규명과 책임자 단죄로 이어질지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정선(강원랜드)=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윤가영 인턴이 기사 관련 영상제작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