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28일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 이병기 전 비서실장,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등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의뢰를 교육부에 요구했다. 수사 대상은 청와대와 교육부 관계자 등 25명 이상일 전망이다. 지난해 9월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위촉한 위원회는 교수·교사·법조인·시민단체 관계자 등 15명으로 구성돼 7개월간 국정교과서 추진 과정을 조사해왔다.
위원회에 따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일었던 지난 2013년부터 추진됐다. 당시 교학사 이외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는 비판이 나오자 박근혜 대통령이 교과서 검인정 체제 강화를 위한 조직 설치를 지시하며 교과서에 대한 개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사위 "청와대가 편찬기준, 내용수정까지 개입"
2014년 1월엔 여당인 새누리당과 교육부가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교육부가 마련한 방안은 검정체제를 강화하는 방안과 국정화 전환 2가지였지만 청와대는 국정화 전환을 요구했다. 고석규 진상조사위원장(목포대 교수)은 "교육부가 국정화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 했지만 반대 여론이 여전히 우세해 담당자가 질책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국정교과서 어떤 내용 수정요구했나
-동학농민운동 관련 내용, 독립협회 활동의 한계 관련 내용 삭제
-남북 평화 모색 활동에 관한 내용 삭제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를 서술한다"는 표현에서 '한계' 대신 '의의'를 사용
-경제발전과 관련한 내용에서 '사회양극화'와 '환경오염' 삭제
2016년 5월에 교과서 초고가 완성된 이후 검토 작업에서 교육부가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이 상세하게 내용을 수정하고 구체적인 문장으로 만들어 국편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진상조사위의 김정인 위원은 "예를 들면, '남쪽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이 이뤄졌다'는 부분을 삭제하게 했다. 주로 현대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수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국정화 찬성의견서 조작, 민간단체 동원 의혹도 제기
위원회에 따르면 2015년 10월에 열린 전국역사대회에서 국정화 반대 성명 발표가 예상되자 이병기 비서실장이 교육부에 사전 대응을 지시했다. 역사대회 당일 고엽제 전우회 등의 단체가 현장에 난입했는데, 위원회는 이에 대해 "고엽제 전우회는 정무수석실을 통해 동원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또 위원회는 교육부가 청와대 지시를 받아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 102명의 국정화 지지선언에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국정화 비밀 TF를 조직할 때에도 법적 절차 없이 운영하다가 뒤늦게 기관장 결재를 받는 등 운영상의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정화 전환 행정예고 기간에 교육부에 도착한 수만장의 국정화 찬성 의견서도 조작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의견서 중 1613건에 동일한 주소가 적혀있고, 한 사람이 100장 이상의 의견서를 내기도 했다. 성명에 '이완용', 주소에 '조선총독부'라고 적힌 의견서도 발견됐다.
위원회는 무더기로 도착한 의견서 중 형식적으로 문제가 없는 677건을 무작위 추출해 확인해봤다. 62%는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답했지만 15%는 제출한 사실이 없다고 했고, 11%는 결번이거나 인적사항이 맞지 않았다.
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근거로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 각 의혹에 대한 수사의뢰를 요구했다. 이병기 전 비서실장과 김상률 전 교문수석을 비롯해 당시 국정화 업무에 관여한 교육부 공무원 다수가 수사 대상이 될 전망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교육부 공무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남윤서 기자 nam.yoonse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