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에서 스타견 된 ‘오구’ 새 주인 찾았다

중앙일보

입력 2018.03.26 00:30

수정 2018.03.2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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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에서 만난 구정아 프로듀서와 오구. 구 프로듀서는 "오구의 촬영엔 간식이 필수"라며 "모델견보단 평범한 개로 살아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임현동 기자.

관객 144만 명을 돌파한 ‘리틀 포레스트’(임순례 감독)엔 귀여운 신스틸러가 있다. 서울에서 힘겹게 임용고시를 준비하다 고향에 돌아온 혜원(김태리) 곁을 지키는 하얀 진돗개 오구다. 

'리틀 포레스트' 촬영장에서 김태리(왼쪽)와 오구.

이 영화에서 오구는 솜뭉치 같은 강아지 시절부터 성견이 된 모습까지 나온다. 성견 모습은 오구와 또 다른 개 진원이 함께 연기했다. 진원이는 개 농장에서 구조돼 동물보호단체 카라를 통해 입양된 진돗개다. 꽃 같은 미모로 ‘견우성’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영화에 먼저 캐스팅됐다. 

오구의 성견 모습을 함께 연기한 진돗개 진원. [사진 구정아 프로듀서 인스타그램]

진원이의 새끼 시절을 연기할 강아지를 찾은 게 오구다. 구정아(44) 프로듀서는 천안의 동물 보호소에서 이 이름 없는 강아지를 만났다. 그러니 오구는 영화 덕분에 오구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구조된 개는 대부분 입양이 안 돼 안락사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이 임시 보호를 해줍니다. 오구의 네 남매도 그런 경우였죠.”
원래는 강아지 시절의 분량을 촬영하고 입양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다. 결국 제주도에 살고 있는, 이 영화의 각본을 쓴 황성구 작가가 맡겠다고 나섰다. 그새 오구와 정이 든 구 프로듀서는 제주도로 보내기 전날 왈칵 눈물이 났다고 했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작가님 집에선 그러면 안 돼’ 하며 애틋한 이별 준비를 하고 경북 군위 촬영장에서 바로 제주도로 보내려던 차였어요. 그런데 조감독이 뛰어오며 ‘오구 한 컷 더 남았어요!’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죠.”
 

강아지 시절 오구. 구정아 프로듀서가 오구를 입양하기 전에 찍었다. [사진 구정아]

그날 제주도에 가지 못한 오구는 구 프로듀서와 함께 서울에 와 예방접종, 피부 치료 등을 마쳤다. 그는 황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오구는 제가 키워야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입양을 결코 쉽게 결정한 건 아니었다. 혼자 사는 그는 열두 살 고양이 냥이를 친구와 함께 기르고 있었다. 봄, 가을엔 구 프로듀서가 여름, 겨울엔 친구가 기르는 식이었다. 또 불규칙적인 영화 일을 하며 개까지 키우는 건 무리였다. 하지만 다시 그 친구와 의기투합해 오구를 한 달씩 번갈아 돌보기로 했다. 서촌에 오래 살던 그는 오구의 산책 코스인 안산도시공원과 친구 집이 가까운 연희동으로 이사까지 했다. 그는 “반려동물을 만나는 건 운명 같다”고 말했다. “내가 반려동물을 키우겠다고 선택한 게 아니라, 이들이 어느 순간 제 인생에 던져진 느낌이에요. 내칠 수도, 내쳐질 수 없는 존재인 거죠.”  

영화 ‘리틀 포레스트’ 구정아 PD
보호소서 캐스팅 했다 정들어 입양
“반려견 사고내면 책임은 주인에게”

인터뷰와 촬영이 진행된 서대문구 안산도시공원은 평소 오구의 산책 코스다. 임현동 기자.

 
고양이만 키워 온 그에게 개는 낯설고 어려운 동물이었다. 구 프로듀서는 “온 집안을 다 헤집고 똥오줌을 아무데나 싸 놓았을 땐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다. 도도하게 자기 영역을 지키는 냥이와 달리 오구는 그에게 1분 1초도 눈을 떼지 않고 쫓아다녔다. “하도 지쳐서 친구한테 ‘개는 자기 생활이 없어?’ 라고 말했는데, 친구가 이 얘길 트위터에 써 리트윗이 10만 번이나 됐대요(웃음).” 
그래도 오구가 주는 기쁨은 남다르다. 호기심도, 애교도, 겁도 많은 오구는 그에게 기대어 잠들기 일쑤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영화 촬영장에서 산 오구는 사회화가 제법 잘 돼 사람이나 다른 개를 보고 짖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구는 촬영장에선 임 감독 옆에 딱 붙어 조용히 모니터를 지켰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 촬영 당시 오구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구정아]

애견인 2년 차가 된 그가 말하는 개는 “사람을 밖으로 이끌어내는 동물”이다. 하루 두 번 산책을 시키다 보면 다른 개와 보호자를 만나 자연스레 말을 건네게 돼서다. 그는 최근 달라지고 있는 애견 문화에 관해 “반려동물 에티켓 등 모든 책임은 주인이 져야한다”고 말했다. “키 40cm의 중대형 반려견의 입마개 의무화 법안 등은 동물에게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방식이죠. 입마개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개가 공격적 성향이 있다면 견주가 알아서 채워야 하죠.”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반려동물이 편하고 행복할 때 더없이 행복해지거든요. 목줄 없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드는 등 작지만 세심한 대책이 바로 애견인이 바라는 복지입니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