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세상만사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판다.' 노숙자·장애인 등의 재활을 돕는 미국의 사회적 기업 '루비콘 프로그램즈'의 슬로건이다. 냉철한 시장과 따뜻한 공동체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은 흔히 '착한 기업'이라 불린다. 그러나 좋은 일도 하면서 이익도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는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 같은 '사회적 경제'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표방하고 있다. 청와대가 발의하는 헌법 개정안에도 이런 내용이 반영돼 있다. 사회적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고, 나아가 시장 경제의 빈틈을 메워줄 것인가. 그 가능성과 한계를 짚어보기 위해 최근 화제를 모은 두 곳의 사회적 기업을 들여다봤다.
문 대통령 신어 화제 모은 '아지오'
폐업했다 재기…"장애인 채용 확대"
폐차 가죽 시트 재활용 '모어댄'
'개념 있는 소비' 젊은층서 각광
정부 지원에도 대다수 업체 적자
"필요한 기업" 인식부터 확보해야
공장의 이력에는 좌절과 행운이 교차하고 있다.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장이던 유 대표는 2010년 장애인 일자리 확보를 위해 공장을 열었으나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문 대통령이 구두를 산 것은 폐업 1년 전인 2012년 9월이었다. 판로를 모색하던 유 대표는 파주가 지역구인 윤후덕 의원의 주선으로 국회회관을 방문해 홍보 겸 판매 행사를 했다. 이때 문 대통령(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에게 맞춰 준 구두가 몇 년 뒤 사진에 찍히고, 이 사진이 1년 뒤 화제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지난해 10월 협동조합을 다시 만든 것은 이런 행운 덕분이었다. 재기에 필요한 자금 4억원은 펀딩과 차입금, 선주문 대금 등으로 조달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부 출범식에서 문 대통령과 5년 만에 만나 덕담을 들었다. 지난달 1일 공장 재가동식에는 홍보 모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 가수 강원래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어렵게 문을 다시 열었다. 소감은
- "한번 실패했다 재기한 사업이라 부담이 더 크다. 작년 11월부터 받아놓은 선주문이 수백 켤레 돼 이를 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하루 20켤레 가까이 새 주문이 들어오지만, 당분간은 속도를 내는 대신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할 생각이다."
- -실패한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 "파주 공장 때 제품 좋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신제품 개발이 받쳐주지 않아 문을 닫았다. 사회적 기업을 시작할 때 감성적 접근만으로 덤벼들면 안 된다. 시장은 냉소적이고, 관용이 없다. 과학적이고 세밀한 '로드맵'이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외부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자립을 다지자는 뜻에서 슬로건을 '대통령의 구두'에서 '친구보다 더 좋은 구두'로 바꿨다."
- -앞으로 목표는
- "매출 16억원이 손익분기점인데, 올해 20억원 매출이 목표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이라 이익은 조합원 배당 대신 조합 발전을 위해 써야 한다. 설립 취지에 맞게 현재 6명인 장애인 고용을 올해 안에 12~13명까지 늘리고 싶다."
모어댄 최이현(37) 대표는 "사진이 보도된 뒤 하루 15개 정도던 가방 주문이 서너배로 늘어나면서 해당 모델이 완판됐다"며 "30~40대 소비자를 중심으로 '개념 있는 제품'으로 인식되면서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사회적 기업을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 접근하는 것은 사회적 경제에 대한 '철학 부재'라고 비판한다. 양준호 인천대 사회적경제연구센터장은 "사회적 기업은 시장경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사회 문제를 '사업적'으로 해결하는 조직"이라며 "이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사회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 문제 해결에 관심 있는 출자자·소비자·재료공급자 등의 욕구를 사회적 기업의 활동과 연결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경제적 기반을 갖추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이런 고민 없이 재정 지원만 퍼붓는 것은 사회적 기업의 자생력을 해치고, 결국 '후진 일자리'만 만들어내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