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신천동 롯데콘서트홀. 지휘자 최수열(39)이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섰다. 하이든 교향곡 98번 2악장을 도입부만 연주한 후 연주자에게 지시를 했다. “이 음악은 하이든이 모차르트의 죽음을 듣고 쓴 곡이에요. 방금 첼로로 연주된 주제, 그걸 거꾸로 한 ‘시레파’ 멜로디가 음악 곳곳에 나옵니다.” 최수열은 오케스트라에게 등을 돌리고 청중을 본 채 설명을 이어갔다. “그 멜로디를 전부 찾아내진 못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하이든은 그런 요소를 즐겨 숨겨놨습니다. 방구석에 앉아서 퀴즈를 내듯이 숨겨놨을 하이든을 생각하게 됩니다.” 최수열은 다시 뒤로 돌아 오케스트라와 하이든 교향곡을 끝까지 연주했다. 2부에는 하이든의 오르간 협주곡을 연주했다. 하이든으로만 구성된 공연은 1시간 반동안 계속됐다.
최수열이 롯데콘서트홀과 함께 기획한 ‘최수열의 고전두시-오후의 하이든’ 시리즈 중 세번째 무대였다. 시리즈는 꽤나 도전적이다. 우선 하이든 작품만으로 연중 10회 열린다. 10번의 무대에서 하이든의 교향곡 13곡, 협주곡 7곡을 연주하게 된다. 하이든은 교향곡을 110곡 썼다. 모차르트 교향곡은 41번이 마지막이고 베토벤은 9곡을 작곡했다. 하이든의 수많은 교향곡 중엔 45번 ‘고별’, 94번 ‘놀람’, 101번 ‘시계’ 정도가 유명하지만 나머지는 큰 인기를 끌고 있지는 못하다. 오케스트라 규모가 작은 편이라 음향은 소박하고 멜로디는 단순해서 자극적이지 않다. 극적인 전개보다는 논리적이고 기품있게 흘러가는 교향곡이다. 100곡 넘는 교향곡은 서로 비슷비슷하게 들리기도 한다.
'오후의 하이든' 시리즈 이끄는 지휘자 최수열
대신 비슷한 수법으로 작곡된 12곡을 공부하고 들으며 하이든풍을 ‘진하게’ 느끼라는 취지다. 그는 “하이든의 후기 교향곡은 정리가 제일 잘 돼있다. 후대 작곡가들이 모범답안으로 삼았다”며 “지휘과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게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후기 교향곡들이다”라고 했다. 모차르트ㆍ베토벤ㆍ브람스로 이어지는 교향곡의 전통이 시작된 시점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해부하는 공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휘과 학생도 아닌 청중이 과연 이렇게까지 하이든을 알아야 할까. 최수열은 “전제조건은 음악에 관심이 있는 청중”이라며 “단지 아기자기한 재미를 좇는 사람들이 아닌 학구적이며 지적 호기심 있는 청중이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롯데콘서트홀에 따르면 지난 1월 24일, 2월 14일, 이달 21일 세번 공연 예매자 중 43%가 50대 이상이었다. 최수열은 “은퇴를 하고 여유롭게 뭔가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분들이 오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드레스덴 음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최수열은 현대 음악에 대한 감각이 있는 지휘자로 무대에 자주 섰다. 서울시립교향악단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했고 지난해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자리를 옮겼다. 무대에 자주 서는 바쁜 지휘자로 꼽히지만 직접 마이크를 잡고 해설을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1일 무대에서 그는 “제가 원래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부족합니다” “등만 보여드리려다 얼굴을 직접 보여드리니 어색하네요” 라며 땀을 닦아냈고 “이제 제가 말하는 맛을 알게 됐나봐요. 좀 편해진 것 같아요” 같은 어눌하지만 솔직한 해설로 공연을 이끌었다.
진행자로는 수줍지만 지휘자로서는 정확하고 학구적인 최수열의 ‘오후의 하이든’은 6월을 제외하고 11월까지 매달 한 번 계속된다. 다음 달 4일 하이든 교향곡 93·96번으로 네번째 공연이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