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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국민’개헌?

중앙일보

입력 2018.03.22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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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근래 “국민”을 자주 입에 올린다. 그제 개헌안 발표 땐 11분간 36차례나 말했다. 대국민 약속이란 강조다. 실상 ‘문재인 개헌안’으로 불릴 터이지만 정권 차원에선 ‘국민헌법’이라 명명한 것도 같은 배경일 게다.
 
빈번하게 귀를 파고드는 “국민”을 들으며 궁극적인 의문이 들었다. 과연 개헌에 대해 ‘국민’ ‘국민의 뜻’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단일한 민의가 있는지 여부다. 혹여 집단적, 아니라면 절대 다수의 의사라고 할 만한 것이라도 말이다.
 
당장은 그렇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아닌 쪽이 커질 게다. 지난주 국회 입법조사처가 낸 100여 쪽 분량의 개헌 여론조사 분석보고서에서 유추하면 그렇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해 국회의장실이 발주한 세 차례 여론조사와 같은 해 12월부터 올 1월 사이 주요 기관들의 다섯 차례 여론조사를 종합검토했다.
 
우선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절대 다수(70%대 중반)이긴 했다. 하지만 질문을 개헌에 대한 찬반으로 살짝 뒤틀면 양상이 달라졌다. 지난해 7월 75.4%였던 게 12월엔 13%포인트 빠진 62.1%로 줄었다. 여론조사상 문 대통령 지지층이 여전히 과다대표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이례적 하락이다. 개헌 시기도 지방선거 때 하자는 의견이 다수처럼 보이지만 선택지를 다양화하면 ‘상관없음’ ‘정부 임기 내’ 같은 경우도 30% 내외의 선호가 있었다.


권력구조의 경우 대통령제를 좋아하긴 하나 분권형에 대한 호감도도 적지 않았다. 기본권을 확대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청와대 안에 포함된 ‘토지공개념’에 대해선 크게 엇갈렸다.
 
분석보고서는 그래서 “일반 국민의 여론은 고정돼 있지 않다. 자신의 이념이나 지지 정당과 같은 정치성향에 따라 태도가 유동하고 있다. 정치권이 국민여론을 수렴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지만 한편으로 정치권에서 형성된 담론이 여론 형성의 결정적 요인임을 알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사실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일반 법률안과 달리 국회에서 수정할 수 없다. 대통령이 철회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수용하거나 부결하거나 그저 뭉개는 방법뿐이다. 국회에서 그냥 통과시킬 가능성은 무한소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개헌 드라이브를 건다면 야당들이 반발할 게고, 그 결과 국민은 갈라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아무리 “국민개헌”을 외친들 점점 더 분열하는 군집들 사이에서 스러지는 정치구호에 불과해질 거란 얘기다. 개헌은 요원해질 테고. 왜 그러는가.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