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절차적 문제 외에 내용 면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헌법 전문에 보수진영이 자랑스러워하는 산업화 역사는 빼고 ‘부마 민주항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진보진영이 강조하는 역사만 집어넣어 이념 갈등과 국론 분열을 부추길 소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헌법학자가 고개를 젓고 있는 이유다.
헌법 전문·토지공개념 신중하게 접근해야
시간 걸려도 국민 통합과 여야 합의가 우선
이 밖에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기본권을 강화하는 것도 청와대 개헌안의 핵심 중 하나인데 이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그것이 제대로 실현되려면 제왕적이라 일컬어지는 대통령 권력을 실질적으로 축소하는 장치들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모두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부르고 ‘국민’을 ‘사람’으로 바꾼다고 해서 절로 지방분권과 기본권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청와대 개헌안은 대통령 4년 중임제만 규정하고 있을 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 중임제로만 바꾼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만 8년으로 늘리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개헌의 무게를 헤아린다면 청와대 수석회의가 아니라 적어도 모든 국무위원이 국무회의 석상에서 치열하게 논의하는 게 헌법정신에 맞다. 대통령이 해외 출장지에서 개헌안의 국무회의 상정, 국회 송부 등 3차례나 전자결재를 하는 것도 헌법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런 설익은 개헌안을 서둘러 던져 놓고 국회더러 표결이나 하라는 것은 오만이며 실제로 개헌 의지가 없다는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개헌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여야 합의 아래 국민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돼야지 어느 한 진영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마구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