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출전 안 했다고 ‘예선 거쳐라’
선수 출산·육아휴가 보장 목소리
도핑 탓 출전 정지 된 것과 결과 같아
윌리엄스는 1회전에서 자리나 디아스(25·카자흐스탄·56위), 2회전에서 키키 베르텐스(27·네덜란드·29위)를 차례로 제압했다. 3회전에선 친언니인 비너스 윌리엄스(38·미국·8위)한테 0-2로 졌다. 시드 없이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비교적 순위 높은 선수들과 맞붙었다. 출산으로 이런 불이익을 당한 건 윌리엄스만이 아니다. 전 세계 1위 빅토리아 아자렌카(29·벨라루스)도 2016년 출산을 위해 코트를 떠났고, 순위가 900위대로 떨어졌다. 지난해 7월 복귀해 현재는 186위까지 올라왔다.
출산 후에 복귀하는 선수가 늘면서 여자 테니스계에선 “불이익 없는 출산휴가를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세리나 윌리엄스는 엄마가 되는 바람에 벌을 받았다”며 “부상으로 인한 공백과 출산으로 인한 공백은 명백히 다르다. WTA는 출산하는 선수를 위해 새로운 랭킹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WTA 측도 “(더타임스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출산한 선수가 다시 코트로 돌아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그들을 고려해 내년에 랭킹 규정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여자 운동선수에게 복귀가 보장되는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은 ‘꿈같은 이야기’다. 여자 선수의 경우 임신을 하면 대부분 은퇴한다. 임신과 출산을 거친 뒤 원래 몸 상태로 회복하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다고 해도 길고 힘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수생활을 하는 도중 결혼해도 은퇴까지 임신을 미루는 게 대부분이다. 1980~90년대 한국 여자배구의 간판이었던 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은 28살 때 결혼하면서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박 감독은 “당시엔 결혼하면 은퇴하는 게 당연했다”고 전했다.
“부상 공백 아닌데 엄마 되니 벌 받나”
1990~2000년대 여자농구를 호령했던 전주원(46) 우리은행 코치도 2004년 출산을 이유로 은퇴했다. 전 코치는 소속팀 신한은행이 2005년 꼴찌로 처지면서 코트로 돌아왔다. 매우 드문 경우였다.
최근 들어선 ‘임신=은퇴’라는 공식이 사라지는 추세다. 임신과 출산 이후에도 왕성하게 활약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37·성남시청)는 2013년 딸을 낳고 4개월 만에 복귀했다. 하루 8~9시간의 훈련을 소화했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금1·동1)과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인증 스포츠 전문의인 이상훈 CM병원장은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체형이 변화하면서 몸이 약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여자선수에겐 임신과 출산이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재활 기술이 발달해 출산 후에도 운동을 계속하는 선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스포츠도 출산 불이익 없애야”
양궁·사격·펜싱·태권도·축구 등 22개 종목의 직장 운동경기부를 산하에 둔 서울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90일의 출산휴가와 최대 1년6개월의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보장한다. 이 제도를 이용해 출산과 육아로 7~8개월 쉬고 팀에 복귀한 사례가 꽤 된다. 사단법인 ‘100인의 여성체육인’의 신순호 사무총장은 “여자선수는 출산과 육아를 위해 20대부터 은퇴 압박을 받는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보장은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면 더 많은 여자선수가 선수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고 반겼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