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구시 동대구역 환승센터 삼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펼쳐진 풍경이다. 시선이 바닥을 향해 있던 ‘스마트폰 보행자’들은 고개를 들지 않고도 신호의 변경을 알 수 있었다. 이 곳 횡단보도 앞 6곳에 ‘바닥 신호등’을 설치한 건 경찰청이다. 경찰청은 이런 ‘바닥 신호등’(가칭)을 정식 보행자 신호장치로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신호등을 바닥에도 설치해 고개를 숙이고 걷는 ‘스몸비(스마트폰+좀비)’의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경찰청 정식 신호장치 도입 추진
길에 매립된 LED전구로 신호 표시
고개숙인 폰 사용자 주의 환기시켜
대구 이어 수원·양주 등 시범운영
3개월 효과 분석해 설치여부 심의
‘바닥 신호등’은 경기도 수원시와 양주시에도 이달 안에 등장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달 말부터 대구시·수원시·양주시 세 지역에서 이 신호등을 동시에 작동시킨다. 이후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약 3개월간 신호 준수 등에 효과가 있는지 분석한다. 서울시와 전남 순천시도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한 달여간 대구시에서 시범 운영한 결과 시민들이 신호를 준수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바닥 신호등’은 시범 운영에서 효과가 입증되면 올 9월쯤 ‘교통안전시설 심의위원회’에서 정식 신호장치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단체가 ‘바닥 신호등’을 기존 신호등의 보조 장치로 설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재 널리 쓰이고 있는 신호등 보조 장치로는 신호등 잔여 시간 표시기 등이 있다.
바닥 신호등 LED 조명의 표면은 방수처리 돼 있고, 강화 플라스틱으로 덮여있다. 하지만 해가 지기 전의 밝기가 기존 보행자 신호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이번 시범 운영 과정에서 관련 기술을 보완한다. 또 신호등의 길이, 설치 위치 등도 다양하게 시도해 표준 규격을 마련할 예정이다.
몇 년 전 일부 지자체에서 노약자의 보행을 돕기 위해 바닥 신호등을 설치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경찰의 허가를 받지 않은 교통시설물이어서 제재 대상이었다. 독일·싱가포르 등도 스몸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바닥 신호등을 설치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스몸비 안전사고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저 ‘사용하지 말라’는 구호에 그치지 말고, 보행 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