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가자 2. “저 산자락에~ 긴 노을 지면~.” 젊은 여성의 소리가 곱다. 심사위원이 물었다. “높은음 어디까지 올라가요?” 피아노로 높은 ‘도’를 짚어줬다. 여성은 ‘솔’까지 불렀다. 성악가인 심사위원들도 놀랐다. 하지만 오디션 한 시간 전 악보를 나눠주고 부르게 한 과제곡에서는 실력발휘를 못 했다. 소프라노 대신 알토를 부르다 다시 소프라노로 돌아오곤 했다.
서울시합창단 오디션 가보니 …
프로단원과 함께할 일반인 뽑아
소리 크고 시원하다고 합격 못해
자기 음역대 아는 게 가장 중요
합창 붐 타고 관련 단체 늘어나
참가자 4. ‘선구자’를 선곡해 온 노년의 남성. 소리는 아주 거칠다. “목소리가 갈라져가, 죄송합니데이.” 꾸벅 인사를 하고 과제곡을 불렀다.
참가자 5. “죄송합니다. 너무 떨려서 … 잠깐만요.” 소리가 예쁜데 고음에서 문제가 있다. 음이 올라가면 손으로 입을 가리는 버릇도 있다. “죄송합니다. 집에서는 잘 됐는데 이게 안 나오네요.” 그러자 한 심사위원이 제안했다. “그럼 파트를 소프라노 대신 알토로 바꿔보실래요?” 잠시 고민하는 참가자. “그건 안 해봐서. 죄송합니다.” 총총히 방을 떠났다.
참가자 6. 많이 긴장한 젊은 여성이 가곡 ‘별’을 부른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켁켁켁.” 소리가 갈라진다. “죄송해요. 너무 긴장해서. 다시 할게요.” 눈을 감고 노래를 이어간다.
이들은 서울시합창단이 5월 공연을 위해 뽑은 시민합창단 지원자들이다. 12일 세종문화회관 연습동에서 열린 오디션엔 82명이 지원해 46명이 합격했다. 서울시합창단의 단장 강기성, 소프라노 수석 최선율, 알토 수석 이재숙, 베이스 수석 김홍민이 심사를 맡았다. 지원자들은 스스로 선곡한 자유곡 한 곡, 당일에 악보를 받고 초견(初見)으로 불러야 하는 과제곡 한 곡을 불렀다.
지원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사람은 소리가 컸지만 음정을 못 잡았고 또 다른 사람은 높은음까지 부를 수 있었지만 자신감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무엇을 중요하게 봤을까.
소리가 크고 시원한 사람이 합창에는 부적합 판정을 받기도 했다. 최선율 수석은 “비브라토가 심하거나 소리가 뾰족하면 합창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걸러냈다”고 했다. 김홍민 수석은 “프로들에게도 합창은 쉽지 않다. 자기 소리를 고집하면 안되고 지휘자 의도에 따라 발성을 자유롭게 바꿀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의 음역대를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하다. 응시자 중에는 소프라노인데 알토로 지원하거나 반대로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음역대를 바꿀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참가자는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최수석은 “여성은 소프라노, 남성은 베이스에 많이 지원하는 게 매년 변하지 않는 경향”이라며 “두 마디 정도만 들으면 그 사람의 진짜 음역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긴장감은 의외로 당락에 미친 영향이 적었다. 강기성 단장은 “성악가들도 다 떤다. 하지만 긴장하는 와중에도 음정을 정확히 낸다. 떨려서 못하는 것과 원래 못하는 것은 한눈에 구별된다”고 했다.
위의 참가자 중 합격자는 1·3·4·6번이었다. 음정이 틀리지 않았고 기본에 충실했던 이들이다. 합격자 중 한 명인 조희화(56·여)씨는 “이사를 세 번 했는데 그때마다 지역의 합창단을 찾아다녔다”는 자칭 ‘합창 중독자’다. “여럿이 같은 소리를 냈을 때 뿌듯함은 말도 못한다”고 했다.
시민 합창단 46명은 정식 단원 40여명과 함께 5월 29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오른다. 지휘자 김명엽, 군포 프라임 필하모닉과 함께 이호준의 ‘어라운드 더 월드’ 중 ‘고향의 노래’ ‘자연의 노래’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