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했던 ‘한국행 꿈’ 이뤘지만 불행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좋아하던 일이 한국행을 꿈꾸게 했고 현재 직업이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어요. 북한에서 전자제품 수리를 하다 ‘메이드 인 코리아’ 라벨을 발견하고 ‘이런 걸 만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호기심이 생겼죠. 자신도 이런 멋진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품었고 결국에는 목숨 걸고 탈북을 감행한 겁니다.
한국서 창업 성공한 탈북청년 김학민 서강잡스 대표
2011년, 스물다섯 살에 탈북에 성공해 한국에 정착한 김 대표는 “불행했다”고 고백했어요. 말투도 다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문화도 달라 어디서도 공감대를 찾을 수 없었죠. 우울증이 생겨 1년간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기도 했어요. 심지어 경찰서에 가서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한 적도 있었죠.
“한국에 와서 정착하는 것만으로 인생 최대 꿈이 이뤄진 것인데 막상 여기 와서 보니 탈북민이라는 제 정체성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이었어요. 오래 방황하다 문득 내 인생이 성공이냐 실패냐 생각하다 보니 이런 결론에 이르렀어요.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망한 인생이다.’ 정신을 차렸죠.”
타인의 조언에 빠져 인생을 헛되이 살지 마라
어린 시절 재능을 살려 알음알음 학생들의 아이폰 수리를 해주던 김 대표에게 어느 날 룸메이트가 귀가 솔깃해지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폰 수리사업을 하면 대박 나겠다”는 거였죠. 그때까지 기술이 발전한 한국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던 그 일이 자신만의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사업을 시작했고 이후 그에게는 우려와 염려가 섞인 조언이 쏟아졌죠.
‘빨리 졸업하고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라’‘탈북자로서 학벌마저 없으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을래’‘학생이 공부를 해야지 뭐하는 거야’‘납땜만 해서는 높은 자리에 못 올라간다’. 부정적인 조언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고마운 조언이긴 했지만 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려 했고 꿋꿋이 자신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했죠. 그랬더니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힘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그때부터 사업도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그는 보이는 차별은 물론, 보이지 않는 차별까지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탈북자라고 밝혔을 때 눈빛·말투·행동 등 온몸으로 무시하는 감정이 느껴졌죠. 그런 차별과 무시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계속 가슴을 따르라’는 스티브 잡스 책을 통해 찾은 자존감 덕이었어요. 김 대표는 “80%가 대학을 나오고 많이 배웠지만 탈북민들에게 배타적인 한국인들을 보면 고학력은 삶의 질과 무관한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청소년들 중에는 ‘꿈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경우가 많다는 질문에 김 대표는 “현재가 행복한가에 답이 있다”고 말했어요. “왜 꿈을 굳이 갈망하고 찾아야 하나요. 현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뭔가를 추구하고 이루려 하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면 PC방에 24시간 살아도 너무 행복하다면 그것이 그 사람의 행복인 겁니다. 굳이 그 사람의 옆구리를 찌를 이유가 없어요. 그가 잘하는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 다른 것을 찾을 수도 있어요. 문제를 일으키는 삶이 아니라면, 어떤 삶에도 꼭 그래야만 한다는 법칙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질적인 방황은 자기다움 찾는 기회
김 대표는 한국에 와서 마주한 많은 사회문제들이 교육에 달려있다는 생각에 학생·학부모들을 위한 조언도 덧붙였습니다.
“자녀를 공부라는 생존 마당에 내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하루 중 몇 시간은 그 학생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기답게 살 수 있게 해주면 좋겠어요. 학생들도 성적이 삶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학교 공부가 제 삶을 바꾸진 않았어요. 좋은 생각을 갖는 것이 자신의 삶을 더 좋게 바꾼다는 확신을 갖길 바라요.”
젊은 탈북민들에게 그는 ‘질적으로 방황하라’고 조언합니다. 방황을 하되 바닥까지 해야지 어중간하면 딛고 일어나는 힘도 적어지고 방황 자체도 의미 없어진다는 거죠. “타인의 조언이나 기대치에 휘둘리지 말고 바닥까지 내려가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걸 딛고 일어나는 에너지는 엄청납니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수리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3년차 스타트업 대표인 그는 최근 사무실을 옮기면서 창업의 발판이 됐던 서강대 기숙사에 소정의 장학금을 기부했어요. 수억 원의 투자 제의를 받았지만 외부의 기대치에 맞추려 애쓰기보다 내부에서 하나를 둘로, 둘을 넷으로 키워나가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김 대표는 “잡스 제품으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고치는 것이 목표”라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글=김은혜 꿈트리 에디터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행하는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dreamtree.or.kr)’의 주요 콘텐트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꿈트리 '자기주도진로'는 소년중앙과 협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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