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김모(36·서울 양천구)씨는 '한글을 가르치지 않고 초등학교에 보내도 된다'고 홍보하던 교육부를 믿은 자신이 요즘 원망스럽다. 한글을 익히지 않고 입학한 자녀가 교육부의 발표와 달리 학교에서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 '공교육이 책임지는 한글' 강조
학교는 '한글 이미 안다' 가정하고 수업
학생에게 '교과서 소리 내 읽기' 시키기도
초등 신입생 기초한글 수업 늘어
하지만 학부모들은 이 같은 정책이 학교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학부모 박모(33·경기도 화성시)씨는 “국어 시간에 낱말 공부 대신 선 긋기, 원 그리기를 하고 말하기나 색칠공부 위주로 수업이 진행되는 건 맞다”면서도 “하지만 담임교사가 '오전에 아이가 읽을 책을 매일같이 챙겨서 보내달라'고 하고, 수업에서 교과서를 소리 내서 읽는 것도 벌써 시키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국어 시간을 제외하면 아이들이 한글을 다 읽고 쓸 줄 안다는 전제하에 학교생활이 진행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녀에게 초등학교 입학 전 아예 한글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맞벌이 학부모 천모(34·서울 송파구)씨는 “후회막급”이라고 토로했다. 천씨에 따르며 최근 그의 자녀는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 미안해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천씨가 이유를 물었더니 아이는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씨를 한 명씩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시켰는데 혼자만 못 읽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천씨는 “벌써 같은 반 아이들이 ‘쟤는 글도 모른다’며 조별 활동에 잘 끼워주지 않는 눈치”라며 속상해했다. 그러면서 “미취학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 ‘교육부를 믿지 말고 한글부터 떼게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초등1학년 입학 보름 만에 '받아쓰기'
1학년 교사들은 "학생들이 한글을 전혀 모른다는 가정하에 수업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서울 송파구의 한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는 “한 학급에서 한글을 아예 모르는 학생은 많아야 2명 정도고 거의 모든 학생이 받침 없는 글자 정도는 읽고 쓸 줄 아는 수준에서 입학한다”면서 “일부 학부모가 받아쓰기 등 ‘제대로 된 공부’를 빨리 시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해 어쩔 수 없이 받아쓰기 시험을 본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기초한글 교육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으면 한글을 모른 채 입학한 학생들이 열등감과 소외감을 겪는 등 학교 부적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논문(‘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한글 해득 수준 향상을 위한 지원 요구 분석’)이 이런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전국 교사·학부모 등 1561명을 설문 조사했는데, ‘학생의 입학 초기 한글 해득 수준’이 ‘학교생활에 대한 흥미와 관심’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이 71.9%나 됐다. 신입생 시기의 한글 해득 수준이 향후 학력 격차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본 교사·학부모도 78.6%였다.
"수업과 별도로 한글교육 프로그램 필요"
기초한글 교육을 도울 전문 인력을 시·도 교육청이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중훈 인천 운서초 교사는 “교사 이외에 기초한글 교육 전문 인력을 교육청 단위에서 지원하고, 입학 초기 학생의 기초한글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도구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학생 각자의 발달 단계에 맞춰 적절한 수준으로 우리말을 배우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문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