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눈앞에 두고 영국에서 발생한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으로 서방과 러시아 간 외교 전쟁이 불붙었지만 푸틴은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지난 14일 2014년 러시아가 전격 합병한 크림반도를 방문했다. 서방의 제재를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과시다. 푸틴은 크림 합병을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운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통치 3기(2012~2018) 성과를 자축했다.
러 대통령 네 번째 당선 확실
옛소련권 결속시키는 푸틴주의 강화
푸틴은 3기 통치 기간 ‘주권민주주의(sovereign democracy)’와 국가자본주의라는 두 바퀴로 러시아를 운전했다. 주권민주주의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와 대비되는 러시아식 민주주의다. 김태환 국립외교원 교수는 “외형상 자유민주 선거를 하지만 선거관리가 편파적이며 야당 탄압과 언론 장악을 통해 반대파가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전통 가치, 즉 민족(nation·국가), 가족, 기독교(특히 러시아정교회) 특수성을 내세워 비민주성을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에 다른 후보 7명도 출마했지만 결국 푸틴의 들러리에 그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국방비 700억 달러, 10년 새 두 배로
푸틴주의는 집권 4기에 더 공고해질 전망이다. 새 임기 6년 ‘강대국 러시아’를 기치로 소련 시절의 국제적 위상을 회복하려는 ‘차르’ 푸틴은 대규모의 군 개혁과 현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 러시아의 국방비는 GDP의 5.3%(700억 달러)로 10년 전에 비해 두 배 증가했다.
러시아는 강화된 군사력을 기반으로 우크라이나 동부, 중동 등 국제 분쟁에서 ‘키 플레이어’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명줄을 쥐고 있는 푸틴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시리아 내전 휴전 결의와 별도로 독자 휴전안을 내기도 했다. 시리아를 기반으로 한 친러 벨트를 중동에 구축하기 위해 이란과도 공조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일원인 터키와도 급격히 밀착하고 있다. “러시아가 여러 국제적 이슈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고 그 뒤엔 푸틴 대통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로이터통신)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시리아·이란·터키와 ‘친러 벨트’ 구축
주목할 것은 푸틴주의 배경에 깔린 유라시아주의다. 김태환 교수는 “푸틴은 옛소련 국가들을 유럽과 구분되는 유라시아권이라는 정체성으로 아우르며 군사·경제, 소프트파워 등을 포괄하는 ‘대장’ 노릇을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푸틴은 이 권역 사수를 위해 동유럽에선 나토의 동진 정책에 맞서고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려 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러 간 밀월 가능성이 제기됐음에도 결국 두 나라가 신냉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푸틴의 국익과 트럼프의 국익이 다방면에서 충돌하기 때문이다.
“북한 비핵화 과정서 적극 개입할 듯”
푸틴식 유라시아주의 강화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장기 집권 체제 구축과 맞물려 한반도 안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고재남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미 관계 정상화와 별도로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며 “자국의 위상 유지 및 강화를 위해 북한 비핵화 과정에 적극 개입하여 다자회담으로 유도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환 교수는 “러시아의 열망을 역으로 활용해 한국의 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