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을 앞두고 이 영화를 제작한 창작집단 광화문시네마의 공동대표이며 ‘소공녀’의 연출자인 전 감독을 만났다. 장편 연출은 ‘소공녀’가 처음인 전 감독은 “어릴 땐 제가 미소 같았는데 어느새 현실과 타협하며 살고 있더라”며 “텐트 치고 살면 뭐 어때, 좋아하는 거 하겠다며 ‘끝까지 가는’ 인물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소공녀’ 전고운 감독
“성장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
N포 세대의 씁쓸한 자화상 그려
- 미소는 주류 한국영화에선 낯선 캐릭터다.
- “남자가 아닌 여자인 데다, 아직도 금기시되는 담배 피우는 여자가 주인공이다(웃음). 그래서 캐스팅이 잘될까, 투자는 될까 걱정이 많았다. 근데 걱정만 하면 어떤 다양한 이야기도 할 수 없겠더라. 용기를 내서 순제작비 2억 원대로 독립영화처럼 찍었다. 배우 이솜씨가 큰 힘이 돼줬다.”
- 왜 하필 담배와 위스키였나.
- “다들 어딘가 중독돼 살고 있는데,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담배와 위스키는 여성이 했을 때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3년 전 담뱃값 인상의 충격도 있었다.”
- 주인공을 가사도우미로 설정한 이유는.
- “일당직 중 여성이 가장 구하기 쉬운 일이다.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인데,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청소에 대한 저의 존경심으로 넣게 됐다.”
무엇이 되겠다는 꿈 대신 현실의 만족을 추구하는 데 충실한 미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을 추구하는 요즘 청춘을 대변한다. 전 감독은 “어릴 땐 ‘꿈을 꿔라’‘꿈이 중요하다’ 가르쳐놓고 성인이 되고 보면 정작 꿈꿀 여유를 허락지 않는 이 사회가 너무 이상해 보였다”며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람답게 사는 게 어떤 것인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삭막한 서울의 풍속도로도 읽힌다. 링거액까지 맞아가며 일하는 커리어우먼, 20년 만기 대출로 아파트를 마련했더니 이혼 위기를 맞은 새신랑 등 누군가에게 ‘집’은 족쇄다. 미소를 가장 못마땅해하는 건 가장 부유한 친구 정미(김재화 분)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전 감독은 경북 울진 출신. 중학교 때 사춘기를 ‘격하게’ 겪고 엄격한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기숙사가 있는 포항 명문고에 진학했다. 숨 막히는 학교생활 에서 그에게 위로가 돼준 게 영화였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전 감독이 남편 이요섭 감독(‘범죄의 여왕’)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들과 문을 연 광화문시네마는 ‘소공녀’를 끝으로 시즌1을 마무리한다. 광화문시네마는 안재홍 등 새 얼굴을 발굴하고 신선한 소재의 영화로 젊은 관객과 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이 모두 만족스럽진 못했다. 전 감독은 “하고 싶은 걸 찾아내 그걸 해내는 게 제 꿈이었는데, 점점 더 그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내가 재밌는 걸 관객이 재밌어할 때 선물을 돌려받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속 영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