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11시 1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부장 이영훈)의 심리로 진행된 첫 재판에서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입을 열었다. 이날 재판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시작(오전 9시 49분)된 뒤 약 1시간 20분 후에 열렸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실과 김 전 비서관의 법정은 불과 약 300m 거리였다.
국정원 특활비 4억원 수수 혐의
김백준 “죄 변명하지 않겠다”
같은날 법정 선 김진모 비서관,
“돈 전달 인정, 혐의는 다툴 여지”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얽힌 각종 의혹들을 폭로하며 입장을 바꿨다. 한때 이 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 중 한명이었던 그가 폭로를 시작하면서 이 전 대통령이 궁지에 몰렸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날 재판에서도 그는 혐의를 인정하며 “국민들에게 사죄한다”고 말했다.
앞서 검찰이 공소사실을 낭독하자 김 전 비서관은 직접 적어온 메모를 꺼내 읽었다. 그는 “저는 제 죄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여생 동안 속죄하는 마음으로 반성하며 살겠다”고 했다. 또 “사건의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최대한 성실하고 정직하게 수사와 재판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그가 국정원 예산을 횡령(업무상 횡령)하고 민정비서관이라는 권한을 이용해 돈을 받았다고(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보고 있다.
김 전 비서관 측 변호인은 이날 “평소 알고 지낸 신승균 국익전략실장에게 국정원 자금 지원을 문의했고 그에게서 돈이 든 쇼핑백을 받아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에게 전달한 사실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변호인 측은 “국정원에 돈을 요청한 목적은 다음에 의견서로 제출하겠다. 횡령과 뇌물죄 적용에 법리적인 다툼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검찰은 이 같은 특활비 상납이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고, 이 중 일부가 이 전 대통령에게 흘러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두 사람 외에도 장다사로(61)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박재완(64)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희중(50) 전 청와대 부속실장 등이 각각 특활비를 상납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이뤄진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의 정점에 박 전 대통령이 있듯, MB 정부 시절 벌어진 특활비 상납 의혹 역시 정점에 이 전 대통령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최진녕 변호사는 “당사자인 김 전 비서관이 모든 혐의를 인정하는 만큼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향후 두 사람의 1심 결과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형 및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