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스키를 타는 좌식 남자 15㎞ 경기에 출전한 신의현(38·창성건설)은 이를 악물고 눈밭을 달렸다. 스키 플레이트가 달린 의자에 앉은 채 폴을 잡고 15㎞를 달리면서 그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팔이 빠질 듯 아팠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골인한 그의 기록은 42분28초9. 출전 선수 29명 가운데 3위였다. 2015년 8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난생처음 스키를 탔던 신의현이 31개월 만에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것이다. 처음 출전한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목에 건 그는 “대한민국 패럴림픽의 역사를 새로 써서 영광이다.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신의현, 한국 첫 동메달 승전보
상체만으로 15㎞ 이 악물고 질주
크로스컨트리 입문 3년 만에 쾌거
여름에 롤러 달고 대관령 넘는 훈련
더 빨리 달리려 체중 4~5㎏ 감량
남은 4개 종목서 추가 메달 도전
“꼭 금 딴 뒤 태극기 세리머니 할 것”
장애인 노르딕스키는 비장애인 스키에 비해 힘이 훨씬 많이 든다. 성봉주 한국스포츠개발원(KISS) 연구위원은 “좌식 경기는 오로지 상체의 힘만으로 스키를 밀고 나가야 한다. 이 때문에 똑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비장애인 경기보다 2~3배가량 더 힘이 든다. 코너를 돌 때도 중심을 못 잡으면 자주 넘어진다”면서 “강한 의지가 없으면 끝까지 하기 힘든 종목”이라고 말했다.
2006년 2월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한 아픔을 겪었던 신의현은 2009년 가을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휠체어농구에 이어 장애인 아이스하키, 휠체어사이클에 이르기까지 땀을 흘리는 운동을 찾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도전했다. 그에게 운동은 살아있다는 증표이자 삶의 활력소였다.
그 덕분에 신의현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리비프 월드컵에서 2관왕에 오른 데 이어 지난달 핀란드 부오카티 월드컵 바이애슬론 7.5㎞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스키를 더 잘 타기 위해 몸무게도 줄였다. 그는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채식 위주로 식단을 짰다. 그 결과 평창패럴림픽을 앞두곤 4~5kg 정도 감량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이날 아들의 경기를 지켜본 어머니 이회갑(68)씨는 “교통사고 이후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는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기도 밖에 없었다. 그저 ‘아들이 살아서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빌었다”면서 “패럴림픽에서 메달까지 따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007년 결혼한 베트남 출신 아내 김희선(31)씨와 딸 은겸(12)양, 아들 병철(9)군도 이날 경기장을 찾아 응원했다. 지난 10일 바이애슬론 7.5㎞에서 5위에 오른 뒤 어머니 이 씨를 보고 눈물을 흘렸던 신의현은 “어머니 앞에서 흘린 건 눈물이 아니라 땀이었다”고 농담을 건네면서도 “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바이애슬론 7.5㎞와 15㎞ 경기를 마친 그는 바이애슬론 12.5㎞와 15㎞, 크로스컨트리 스프린트(1.1㎞)와 7.5㎞ 등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틀간 눈밭을 22.5㎞나 질주한 그는 평창패럴림픽 기간 총 60㎞ 가까운 거리를 달리는 강행군을 펼친다. “남은 4개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나를 위해 희생한 가족들에게 꼭 금메달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신의현이 출전한 좌식 15㎞ 종목에는 북한의 마유철(27)과 김정현(18)도 출전했지만, 완주에 만족해야 했다. 두 선수는 패럴림픽 출전을 위해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스키를 접했다. 29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2명이 중도에 레이스를 포기한 가운데 마유철은 26위(1시간4분57초3), 김정현은 27위(1시간12분49초9)를 차지했다. 김정현은 특히 금메달을 딴 막심 야로프이(우크라이나·41분37초0)에 31분12초9나 뒤진 기록으로 골인했다. 그는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레이스를 펼쳐 관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평창=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