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국민·가족에게 미안” … 피해자엔 사과 안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18.03.1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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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하고 있다. 안 전 지사는 ’국민 여러분께, 도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올린다“ ’제 아내와 아이들,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가 잠적 나흘 만인 9일 모습을 드러냈다. 평소 입던 정장이 아닌 검은색 롱패딩 차림이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오후 5시쯤 서울서부지검에 출석하며 “상처 입은 국민 여러분께, 또 도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그리고 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잠적 나흘 만에 검찰에 자진출석
법조계 “사전에 조율된 사과 발언”
성폭행 오피스텔은 친구 회사 소유
사용료 안 내 김영란법 위반 소지

하지만 이날 오전부터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고 있던 피해자 김지은(33)씨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피해자 말이 맞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앞으로 조사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겠다”고만 답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안 전 지사의 발언을 두고 “사전에 조율된 교과서 같은 사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법리적으로 재판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과를 하면 잘못을 인정하게 되니 조율된 발언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 측은 이날 오후 3시40분쯤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겠다고 알렸다. 검사 출신 최운식 변호사는 “이례적이긴 하지만 먼저 요청해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를 지원하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전성협)는 “안 전 지사의 일방적 출두 통보는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법적 절차에 따라 가능한 범위 내에서 철저히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성폭행 장소인 오피스텔 무료 사용 의혹=범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도화동 오피스텔은 H건설회사의 소유물이다. 이 회사 대표는 안 전 지사와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낸 S씨(53)다. 주변 부동산 중개업자 등에 따르면 안 전 지사가 사용한 방은 전용면적 55.92㎡(16.9평)로 매매가는 3억8000만~4억원,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50만원 수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H건설은 지난해 8월 이 오피스텔을 매입했다. 안 전 지사는 이후 이 오피스텔을 이용하면서 따로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았다. S씨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안희정 전 지사에게 빌려주거나 제공한 게 아니라 비밀번호만 알려줬다”며 “돈(사용료)을 받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가 오피스텔을 사용하고 이용료를 내지 않았다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월세를 안 내고 사용했다면 김영란법 위반이다. 대가 관계가 있다면 뇌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한 H건설은 연 매출 800억원대 중소기업이다. 경기도 성남에 있다. 1999년 설립돼 주로 대우건설 도급을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교롭게도 안 전 지사는 2002년 대통령선거 당시 대우건설 등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았다.
 
대우건설 측은 해당 건설사에 도급을 준 것은 안 전 지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S씨는 90년 1월 대우건설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가 99년 6월 퇴사했다.
 
홍지유·정진호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