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탄' 터진 한국 철강업계, 올해만 1.3조 수출 피해

중앙일보

입력 2018.03.0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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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미국내 철강ㆍ알루미늄업체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수입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보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 부과 안에 서명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의 피해가 현실화했다. 국내 산업계는 철강에 이어 반도체·자동차 등 다른 품목으로 무역 규제가 번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국내 철강업계가 입을 수출 피해액은 12억 달러(약 1조3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된다. 나이스(NICE)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내 철강업계의 지난해 총 수출량 3170만t 중 대미 수출량은 354만t(11.2%)에 달했다. 이중 추가 관세 부과로 줄어들 대미 수출량을 고려하면 전년 대비 140만t, 금액으론 12억 달러에 이른다는 것이다.

"송유관 등 강관 제작업체 직격탄"
"반도체·자동차 등으로 무역 규제 확산 우려"
"한국 정부, 미국 내 이해당사자 설득 나서야"

최중기 NICE신용평가 기업평가1실장은 "이번 규제 현실화로 대미 철강제 수출이 위축될 것"이라며 "특히 대미 의존도가 높은 강관(강철로 만든 파이프) 제작사의 영업 실적에 위협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철강시장에서 수입물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해 27.5% 수준이었다.(왼쪽) 수입물량 가운데 16.1%가 캐나다산으로 가장 많다. 자료=미 상무부

지난해 기준 한국에서 생산된 유정용 강관(원유·천연가스 채취용 강철 파이프)중 99%, 송유관 중 80%가 미국 시장에 수출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국제 유가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서 미국 셰일오일 시장을 노리고 관련 제품 수출에 공을 들여 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선 세아제강·넥스틸·현대하이스코 등이 관련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동국제강 등 대형사들의 지난해 기준 미국 수출 비중은 3~4%인 데 비해 이들 제품은 미국시장 의존도가 특히 높다. 
 
철강업계는 또 미국 이외 시장에서의 경쟁 격화에 따른 '2차 피해'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시장으로의 수출이 어렵게 되면, 미국 이외 시장에서의 경쟁이 심해지고, 개별 국가마다 한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 강판(강철로 만든 철판) 위주로 수출하는 업체들의 미국 수출 비중은 3~4%로 크진 않지만, 미국 수출이 막힌 해외 경쟁사들과 미국 시장 밖에서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관건은 트럼프의 무역 규제가 지난 1월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발동에 이어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부과하는 데서 그칠지다. 국내 산업계는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와 자동차까지 통상 압박이 확산할 수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진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무역 규제가 반도체·자동차 부품 등으로 확대되면 앞으로 5년간 수출 손실 규모가 최대 13조원에 이르고 국내 일자리는 4만5000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최근 국내 반도체에 대한 관세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한국 자동차 업계에 미국 내 생산 확대와 고용 창출을 압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무역 규제가 다른 산업군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통한 해결은 당장 부닥친 무역 규제 피해를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직접 미국 정부와 국회,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본부장은 "WTO에 제소해도 그 결과는 최소 2~3년 뒤에야 나올 수 있다"며 "농·축산업 등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익을 얻는 미국 내 이해당사자를 찾아 한국도 보호주의 정책을 펼 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