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은 12 제일호가 V-PASS를 꺼놓은 것이 불법 조업과 관련이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11 제일호가 전복된 채 발견된 곳이 조업금지구역이어서 해당 어선이 불법으로 조업하다 사고를 낸 것인지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생존자 등으로부터 고기잡이를 끝낸 지 20여분 전후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당시 기상여건과 배 속도를 고려할 때 조업 가능 구역과 30분~1시간 정도 떨어져 있어 불법으로 조업했을 가능성이 있어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트남 생존자 마이쑤언람(28)씨는 본지와 인터뷰에서 “고기잡이 작업을 마치고 그물도 다 끌어 올린 상태에서 파도가 치면서 배가 옆으로 뒤집혔다”며 “배가 뒤집힐 때 다른 베트남 생존자 2명과 함께 먼저 물에 뛰어들어 구조됐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와 해경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 4만여대의 선박에 V-PASS를 달았다. V-PASS는 침몰 등의 위급 상황 시 배의 위치를 VTS에 자동 보고하고 일정 각도 이상 기울면 자동으로 구조신호를 보내는 등 바다의 비상벨 역할을 하는 안전에 필수 장비여서다. 그러나 상당수 배가 V-PASS가 고장이 난 채 항해나 조업을 하고 아예 꺼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해경과 전문가들의 말이다. V-PASS를 꺼놓으면 VTS에 배와 관련된 정보가 보내지지 않아 불법 조업 등이 가능해서다. 한 해경 관계자는 “일부 어민들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어장이나 낚시용 포인트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까 봐 일부러 V-PASS를 꺼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V-PASS가 꺼져 있을 경우 사고 때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지난달 28일 오후 4시28분쯤 전남 완도군 청산도 인근 해상에서 전복된 채 발견된 7.93t급 어선 근룡호가 대표적 사례다. 근룡호는 하루 전 오전 9시쯤 선장과 선원 등 7명을 태우고 완도항을 출항해 여수시 거문도 해상에서 조업했다. 이후 28일 낮 12시 56분쯤 진모(56) 선장이 지인에게 “기상 악화로 청산도로 피항한다”고 통화한 후 연락이 끊겼다. 약 3시간 뒤 지나가던 유조선이 전복된 근룡호를 발견했다. 당시 해상은 높이 3m 파도가 치고 시속 15m 강풍이 불었다. 해경 관계자는 “근룡호는 조난을 당하면 자동으로 구조 요청을 발신하는 V-PASS(어선위치식별장치)를 장착했으나 당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고장이 난 것인지 일부러 꺼 둔 것인지는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해사수송과학부 교수는 “V-PASS 등이 사고 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것을 선장과 선원들에게 자주 교육하고 해경도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사전 점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V-PASS 같은 안전장치를 선장 등이 임의로 조작하지 못하게 하고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등의 제도 손질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6일 통영 제일호, 지난달 28일 전남 근룡호 등
사고 난 배마다 V-PASS 고장나거나 작동 안한 것으로 드러나
불법 조업이나 어장 정보 숨기려 일부러 V-PASS 꺼는 경우 많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