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 넘어 술자리에 있으면 회사 명예 실추”…언론사 ‘미투’

중앙일보

입력 2018.03.07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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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사가 성추행 피해를 진술한 소속 기자를 오히려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는 ‘미투’ 증언이 나왔다. “기자가 밤 10시 넘어서까지 술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회사 명예를 실추한 것으로 간주되고 처벌이 가능하다”는 이유였다.  
 

[연합뉴스]

한 경제신문 기자인 A씨는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글에 따르면, A씨는 2014년 1월 소속 부서 팀원·취재원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선배 기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A씨가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도 강제추행을 했다고 한다. A씨는 당시 다른 선배들에게 고민을 털어놨다가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결국 A씨가 다른 이유로 휴직 절차를 밟는 사이 성추행 사건이 회사에 알려졌다. A씨는 진상조사에 나선 회사 측에 진술서와 당시 정황을 입증할 증거들을 제출하며 “가해자에게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고 싶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A씨는 “그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던 2015년 말, A씨는 회사로부터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회사의 신용을 훼손하거나 명예를 오손하는 언동을 했다’는 명목이었다. ‘밤 10시 넘어서까지 술자리에 있었다’는 진술서 내용이 그 근거였다.
 
회사 간부는 “노무사에게 자문한 결과, 기자가 밤 10시 넘어서까지 술자리에 있었다는 것이 회사 명예를 실추한 것으로 간주되고 처벌이 가능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고 A씨는 밝혔다.
 
결국 A씨는 관련 기관·법조인의 자문을 받으며 소명을 해야 했고, 2015년 7월 사규의 상벌규정에도 없는 ‘주의’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징계심의를 받았던 가해자는 아랫사람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감봉 6개월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A씨는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해자는 한 사람이었지만, 어느 순간 조직과 싸우게 됐다”며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개적으로 글을 썼다”고 밝혔다.
 
해당 언론사는 “A 기자에 대한 징계 논의가 있었던 것은 맞다”면서도 “당시 외부 조언을 받아 일을 절차대로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