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지난 5일 안 전 지사의 비서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를 하면서 “안 전 지사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차기 대선주자서 성폭행 피의자로
지사 사표 수리 … 29년 정치인생 끝
“모두 다 제 잘못” 페북 사과 글에
비판 댓글만 4000개 넘어서
트위터 모임 “피해자 편에 설 것”
친노무현계와 친문재인계는 당혹감에 일제히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됐다”며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모두 다 제 잘못”이라며 폭로 5시간 만에 페이스북에 올린 사과의 글에는 4000개가 넘는 비판 댓글이 달렸다. 그중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두 번 죽인 것”이란 글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일부 주민은 “다시는 이 마을에 발을 들이지 말아야 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 5일 폭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안 전 지사는 깨어 있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았다. 1964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남대전고 1학년 재학 중에 군사정권을 비판하다 제적당했고 이후 서울 성남고에 재입학했지만 자퇴 뒤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후 민주화 운동으로 옥살이 등을 하며 입학 12년 만인 95년이 돼서야 학사모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3년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일로 감옥에서 1년을 살았고, 출소 후에도 변변한 공직을 맡지 못했다.
안 전 지사가 2008년 1월 자서전『담금질』을 내자 퇴임을 앞둔 노 전 대통령은 출판기념회 축하 영상을 촬영하다가 “안희정은 나에게 정치적 동지다. 안희정씨가 내 대신 많은 희생을 감수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다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가 끝난 뒤 스스로 ‘친노 폐족(廢族)’까지 선언했던 안 전 지사는 2010년과 2014년 지방선거에서 연거푸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도약기를 맞았다. 지난해 5월 대선을 앞두고는 민주당 후보 자리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과 경쟁을 하기도 했다. 대세론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통합의 가치를 강조하며 정치적 외연을 넓히려는 그의 시도는 정치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 5일 성폭행 폭로 이후 6일 충남지사 사표가 수리되고 민주당이 윤리심판원 회의에서 안 전 지사의 제명을 최종 결정함에 따라 그의 29년 정치 인생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하루아침에 그는 유력한 차기 여권 대선 주자에서 성폭행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