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의 쿠바 이주는 1921년 3월 맥시코 이주 한인 중 288명이 일자리를 찾아 쿠바로 이주 한 것이 시초다. 당시 쿠바에선 미국인들이 사탕수수 농장을 개척하면서 노동력 수요가 급증해 1902~1920년 1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이주했다. 하지만 사탕수수 산업이 불황을 맞으면서 이들은 마탄사스의 에네켄 농장으로 이주해 엘볼로 마을에서 모여 살았다.
1세대, 중노동하며 독립자금 송금
현지 동화됐지만 뿌리·문화 유지
그는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2004년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그의 아들 세르히오 임은 59년 쿠바혁명에 참가하고 농업 차관을 지냈다.
이제 한인들은 모두 이 벽촌 마을을 떠나 아바나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남은 사람은 없었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 30명은 기념비 앞에서 강강술래를 하고 목멘 ‘아리랑’을 부르며 이역만리에서 고국을 그리워했을 쿠바 이주 한인들의 넋을 기렸다.
아바나엔 한인회관이 있지만, 다민족국가 쿠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최근 쿠바 애국 시인의 이름을 딴 ‘호세 마르티 문화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인회장에서 문화회관 관장으로 직함을 바꾼 안토니오 김(74)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고 현지인과 동화했어도 한국이라는 뿌리와 문화는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쿠바인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한글 교육이 활기를 찾고 있으며 재정 문제 등으로 일시 중단했던 한식 강좌도 조만간 재가동할 채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조국을 잊지 않는 동포들의 가슴 찡한 모습이었다.
마탄사스(글·사진)=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