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1위를 달리면서 눈앞에 보이는 듯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의 ‘3선(選)행’이 순탄치 않다. 미세먼지 저감대책으로 야심차게 내놓은 대중교통 무료정책은 여론의 반발을 불렀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사실상 결선투표 적용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결선투표가 적용되면 박 시장에게는 돌발변수가 될 수 있다. 여기에 정치적으로 빚 진 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의원의 시장 선거 등판설이 점차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3선 고지로 가는 길에서 뜻밖의 난관들에 직면한 박 시장을 밀착마크했다. 지난달 26일 일일 동행취재한 후 전화ㆍ서면 인터뷰를 이어갔다.
박 시장이 그러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놓인 두 번의 고비부터 넘겨야 한다. 당내 후보 경선에서 이겨야 하고, 그 후 본선에서 야당 후보를 꺾어야 한다.
박 시장 “2단계 경선 방식 써도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는가”
- 당이 결선투표 방식을 쓴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
- 따라야지 어쩌겠는가. 후보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시너지를 높이는 방향이라면 굳이 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 2차 경선에 가면 박빙의 승부가 될텐데.
- 유불리는 있겠지만 크게 달라질 게 있겠는가.
차기 대선 묻자 “할 일 뭘까 고민…자리 생각은 안해”
- 당 안팎에서 시장 3선이냐, 차기 대선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지적이 많다.
- 자꾸 사람들이 대선 얘기를 하는데 그런 당파적 생각이나 정치적 판단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다.
- 시민들이 원한다면 대선에 나올 수 있는가.
- (갑자기 말이 빨라지며) 저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내가 할 일은 뭘까를 고민했지 뭔가가 돼야겠다고 자리 고민한 적은 없다.
박 시장은 지난 대선 때 출사표를 던졌다 선거 4개월을 남기고 레이스를 접었다. 준비 부족이었다. 박 시장의 참모(정무부시장)였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후보 비서실장)로 옮겨간 게 대표적이다.
- 임 실장이 곁을 떠난 이유는 뭔가.
- 제 역할을 잘 해준 인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서울시에서 검증된 인재와 정책을 쓰겠다 했고 저 역시 새 정부 성공을 위해 얼마든지 지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 대선에 나설 거면서 그랬던 건 이해가 안간다. 일각에선 임 실장이 박 시장에게 대선 캠프 총괄을 맡겠다고 자청했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안 오자 문 캠프로 갔다고 하던데.
- 서울시와 정부가 한 팀인데 내 사람, 네 사람이 어딨나. 임 실장 뿐 아니라 청와대로 간 김수현 사회수석,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등이 모두 같은 케이스다.
‘안철수 출마시 이길 자신 있나’ 묻자 “시민들 마음에 달려”
- 안 전 대표의 출마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 출마는 자신의 실존적 결단이 필요한 일 같다.
- 박원순ㆍ안철수 간 빅매치가 성사되면 어떻게 될까.
- 오래 전 신뢰를 쌓은 관계지만 지금은 가는 길이 달라졌다. 나는 민주당 후보로서 서울의 성공이 문재인 정부의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뿐이다.
- 이길 자신 있나.
- 제가 자신 있다고 한들…. 시민들이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려 있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 대중교통 무료정책이 시장 선거 경쟁주자들로부터 집중 포화를 받은 게 서운했다고 한다. 여간해선 직설화법을 잘 안 쓰던 그가 미세먼지 정책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에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특히 안 전 의원이 ‘포퓰리즘’이라며 자신을 공격한 일을 얘기하면서는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시장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민 안전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니 그 정치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게 당시로서는 불만족스러웠다”고 했다.
박 시장은 실효성 논란을 부른 대중교통 무료정책에 대해 “많은 논쟁이 벌어지면서 오히려 미세먼지 대책이 얼마나 중요하고 서울시가 얼마나 결의에 차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면 인터뷰 하루 뒤인 지난달 27일 서울시는 이 정책의 중단을 발표했다. 1월 15ㆍ17ㆍ18일 세 차례 적용된 이 제도는 시행 두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바뀐 이유를 묻자 박 시장은 “변경이 아니라 애초 대중교통 요금 면제는 종국적으로 차량 의무2부제 등으로 가기 위한 ‘마중물 사업’이었다”며 “원래 플랜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 “직원들에 많은 과제 반성…‘깨알수첩’ 버린 지 오래”
- 만기친람형이어서 직원들 사이에선 ‘시장이 아니라 6급 주사 같다’는 얘기도 나온다던데.
- 천만 시민의 삶을 꼼꼼히 살피는 ‘현미경 시정’과 넓은 시각으로 비전을 완성해가는 ‘망원경 시정’이 모두 필요하다.
- 시장 재임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 공무원이 8명에 이른다. 이들 중 일부는 업무 과로를 호소한 경우도 있었는데.
- 제가 일 욕심도 많고 너무 많은 과제를 부여했던 탓도 있는 것 같다. 반성하고 성찰했다. 업무부담은 줄이고 휴식이나 휴가를 늘리는 방향으로 조직문화를 바꿔갈 것이다. 그 유명한 (업무용)수첩도 버린 지 오래다.(※박 시장은 아이디어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토대로 직원들에게 ‘깨알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들 병역면제 논란 묻자 목소리 높아져…“그런 질문조차 불순”
-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처리는 어떻게 예상하나.
- 민주주의 기본을 흔든 행위까지 용서받기는 어렵지 않을까 한다.
- 아들 박주신씨 병역면제 의혹을 제기한 의사 등 7명에 대한 명예훼손 항소심에서 주신씨가 증인으로 신청됐는데 재판에 계속 안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 아니, 저는 그 질문조차도 사실 좀 불순한 거라고 생각한다. 전 정부가 저를 엄청나게 탄압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일 아닌가.
이 대목에서 박 시장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쳤고 인상을 찡그렸다.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7명이 1심에서 벌금 700만~1500만원의 유죄가 선고됐는데도 왜 이 문제를 거듭 제기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박 시장은 이동 도중 비서진이 건넨 노사정 정책간담회 인사말 자료를 훑어봤다. 박 시장은 서울시 노동정책에 자부심이 크다고 했다.
- ‘노동존중 특별시’를 표방했는데.
- “역대 시장 중 노동정책을 가장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일자리 노동국을 신설했고, ‘노동의 경영 참여’를 모토로 도입한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정부가 벤치마킹해 중앙정부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들과의 타운홀 미팅 참석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 추석 때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펑펑 울었다”며 “주거ㆍ육아 문제로 고통을 겪는 이 시대 여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은 30대 여성이 일생 동안 겪는 성차별을 고발해 반향을 일으킨 소설이다.
간담회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더 늘려달라”. “좋은 정책들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책 홍보를 더 했으면 좋겠다” 등 의견들이 제시됐다.
육아휴직 중이라는 정찬흥(37)씨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부의 삶이 이해가 됐다”며 “아빠들도 육아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제도를 개선해달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호응했다.
시정 챙기랴, 선거 준비하랴 박 시장의 하루는 길고 길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뒤져봤더니
“아무 것도 모르고 실컷 놀다가 / 푹 자고 일어나 / 학교 갈 준비를 하다 보니 / 생각 난 숙제”로 시작하는 이 시의 작자는 ‘이한나’라는 이름의 한 초등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