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부통령과 김여정 부부장의 접촉이 불발됐지만, 펜스 부통령이 귀국 후 북한과의 탐색적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폐회식에 온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대화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북·미 대화의 실마리를 마련했다. 남북 여자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 김여정 일행에 대한 과도한 의전 논란, 천안함 사건 책임자인 김영철 방문 처리 등에서 매끄럽지 못한 점은 있었지만, 정부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풀기 위한 동력을 창출하려는 시도는 일정한 성과를 거뒀다.
한·미·일 공조는 북핵 대처 핵심
대북 외교게임서 일본 역할 중요
한·일은 서로 손가락질하기보다
협력 통한 ‘덧셈의 외교’ 꾀해야
북핵 대처에 있어 주변국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일본이다. 그간 한·미·일 공조체제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주요 기제였고, 북한 비핵화에 관해 한·일 양국이 공통의 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하면 비핵국인 한·일은 미국의 핵우산과 확장억지에 의존하는 상황이 된다. 미국의 군사 옵션이 현실화되면 가장 피해를 입을 곳도 한·일이다. 일본은 주일 미군기지가 있고 후방 지원 업무를 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2016년 말 부산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악화된 한·일 관계는 개선의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에 온 아베 총리에 대한 별도의 식사 기회가 없었던 점과 한·미 연합훈련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비정상적 한·일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한국은 과거사 문제와 다른 분야를 분리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겠다는 투트랙 접근을 하지만, 일본은 2015년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원트랙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양국은 관계 악화로 인한 막대한 기회비용을 따져보고 조기 정상화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끝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것을 촉구했다. 반면 스가 일본 관방장관은 “합의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의’를 중시하는 한국과 ‘약속’을 중시하는 일본의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양국 정부는 상대방에 대한 손가락질로 문제를 더 꼬이게 하지 말고 소통과 숙의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2015년 합의는 현안 해결을 위한 외교적 절충을 시도한 것으로, 보편적·역사적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양측 모두 국내적 고려에 함몰된 ‘뺄셈의 외교’를 버리고 상호 협력을 통한 ‘덧셈의 외교’를 꾀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인 피해자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역사 교훈으로 삼는 노력을 통해 합의를 보완해가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와 법치를 유지하는 데 공통 이해가 있다. 아시아 가치사슬 내에서 일본의 앞선 제조업 기술을 확보하는 일도 우리에게 중요하다.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 에너지, 제3국 진출 등 한일 협력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웃 국가와의 외교를 흩트리면 외교의 기본 틀이 흔들린다. 올해는 한·일 관계의 새 시대를 열었던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 20주년이 되는 해다. 양국 지도자들은 셔틀 외교를 조기 재개하고 새 비전과 각오로 21세기 한·일 관계의 틀을 짜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바란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