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의 하나가 바로 기술 표준에 대한 것인데, 어느 분야건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이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기 위해선 규격 및 기술 방식의 표준화가 선행돼야만 한다. 텔레비전, 이동통신 서비스 등 우리에게 익숙한 첨단기술제품들은 거의 대부분 유관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 등에 의해 기술 표준이 정해져 왔다.
현재까지 선보인 암호화폐의 종류만 천여가지가 넘는다고 하는데, 표준화 등을 통하여 매우 적은 개수로 걸러지지 않는다면 대중적인 거래 수단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할 것이다. 그러나 개방형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암호화폐는 은행과 같은 중개자가 필요 없는 탈중앙화, 분권화 등을 지향하여 탄생한 취지와 특성에 비추어, 국가기관이나 세계기구 등이 기술 표준을 강제한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될 수밖에 없다.
현행 암호화폐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전력 낭비적 채굴 방식 및 시스템 문제 등으로 인하여 거래 수단으로서의 전망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제반 문제를 해결한 획기적인 새로운 암호화폐가 장래에 출현한다고 해도, 과연 기술 표준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암호화폐는 당초 이상과는 달리 특정 금융기관이나 기업, 국가 등이 주도하는 폐쇄형 블록체인 기술로 만족해야 할 지도 모른다.
최성우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