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서울(서울역,용산역)과 수서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인 KTX와 SRT의 평일 좌석 점유율은 60~70%입니다. 얼핏 여유 있어 보이지만 속 사정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데요. 부산, 광주, 목포 등 장거리 구간이 아닌 서울~대전 구간만 따지면 평일 낮과 출퇴근 시간대에는 빈 좌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만큼 표 구하기도 쉽지 않은데요.
주말은 상황이 더 빡빡해서 장거리 구간도 꽤 나 붐빕니다. 수서~부산, 수서~광주 구간의 SRT는 좌석 점유율이 아예 100%에 달합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고속열차 이용객은 하루 평균 20만 8000명이었는데요. 이는 당초 3년 뒤인 2020년에나 도달할 것으로 예상됐던 수치입니다. 그만큼 고속열차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KTX와 SRT 열차 운행을 더 늘려 달라는 민원도 제법 많다고 합니다.
병목 현상..도로 아닌 철도에도 존재
이쯤 되면 당연히 코레일이나 SR에서는 열차를 더 투입할 만한데요. 그런데 열차는 더 못 늘리고 애만 태우고 있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고속철도의 병목 현상(bottleneck) 때문입니다. 병목 현상은 흔히 도로에서 많이 언급되는데요. 7~8개 차로의 넓은 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3~4차로의 좁은 길로 들어서게 되면 엄청나게 체증을 겪게 되는데 이게 병목 현상입니다.
철도에도 이런 병목 현상이 있습니다. 고속철도 노선도를 잘 살펴보면 서울역,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노선과 수서에서 출발하는 노선이 평택에서 만나서 오송역까지 이어지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후 오송역에서는 다시 호남선과 경부선으로 철로가 갈라집니다.
평택~오송 구간에 막혀 열차 증편 못해
문제는 평택~오송의 45.7㎞ 구간입니다. 이 구간은 2004년 KTX 개통 당시 모습 그대로인데요. 수서발 SRT가 더 보태졌지만, 도로로 치자면 확장공사를 전혀 하지 않은 겁니다. 선로 용량이라는 용어가 있는데요. 일정한 구간에서 1일 투입 가능한 최대 열차 운행 횟수를 의미합니다.
현재 평택~오송 구간은 선로 용량의 93%인 176회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선로는 유지보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로 용량의 최대 80%까지만 열차를 운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과거 선로가 하나인 단선(單線)이 많던 시절에는 유지 보수를 위해 선로 용량의 50%만 열차를 운행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대부분 선로가 둘 이상인 복선(複線)인 데다 신호 시스템이 발달한 덕에 선로 용량 활용률이 그나마 80%까지 올랐다는 설명입니다.
정부의 뒤늦은 대처가 사태 키워
사실 이런 문제는 2010년 수서~평택 간에 고속철도 건설을 추진할 때부터 예견됐던 겁니다. 정부가 병목 현상을 고려해 미리 평택~오송 구간의 선로 용량을 늘리는 작업을 준비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겁니다. 뒤늦게 지난해 '고속철도 평택~오송 2복선' 건설사업을 민자 사업으로 추진하기 위해 적격성 심사를 했지만,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국민 편의를 위해서 당장 서둘러 확장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판단됩니다만 일부에서는 조심스러운 반응도 나옵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게 경제성 분석(B/C)인데 통상 1.0 이상이 나와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데요. 여기서 B는 편익(Benefit), C는 비용(Cost)입니다. 쉽게 말해 들이는 돈에 비해 편익이 얼마나 되는지 따지는 겁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게 바로 이 편익입니다. 도로, 철도 등의 SOC(사회간접자본) 사업에서 편익을 계산할 때는 주로 인근에 크고 붐비는 도로가 있으면 유리합니다. 이 도로 주변에 새로운 도로나 철도를 건설하면 교통량이 분산되고, 이로 인해 두루 차량 소통이 빨라지면서 그만큼 편익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택~오송 2복선은 지하에 건설하는 데다 주변에 그런 조건의 도로가 별로 없어 편익이 생각보다 적게 나올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또다시 2복선 건설이 미뤄질 수도 있습니다.
평택~오송 2복선 서둘러 착수해야
대부분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SOC 사업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예비타당성 조사이고 경제성 분석입니다. 하지만 경제성 분석이 모든 걸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실질적으로 필요하고 많은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판단되는 사업은 경제성이 다소 안 나오더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겁니다.
호남고속철도가 좋은 예인데요. 2000년대 초반 실시된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이 0.3 정도로 극히 적게 나왔습니다. 원칙대로라면 호남고속철도 사업은 폐기돼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사업"이라며 건설 추진을 결정했고, 지금의 호남고속철도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우선 급한 곳이 평택~오송의 병목 해소이지만 사실 수도권에는 병목 구간이 몇 곳 더 있습니다. 서울~금천구청, 서울~수색, 청량리~망우 구간 등입니다. 이곳들은 고속열차뿐 아니라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일반 열차에 수도권 전철, 화물 열차까지 몰리면서 상당히 혼잡합니다. 경춘선 열차의 상당수가 상봉역에서 출발하게 된 것도 청량리~망우 구간의 병목 현상이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새로운 철도를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구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재정비하는 것 역시 무척 중요합니다. 평택~오송 2복선 사업이 조속히 결정되고 추진돼 보다 편하고 여유 있게 KTX와 SRT를 이용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용어사전 병목 현상(bottleneck)
도로가 넓은 곳에서 갑자기 좁은 곳으로 차량이 몰려들면 좁아진 도로로 인해 교통 혼잡이 빚어지는 등 차량 정체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를 병의 좁은 목에 비유해 병목현상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