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이제 시작이다 <상>
성범죄 피해자들의 증언을 무력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 법 조항이 있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형법)이다. 현행법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정보통신망을 통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징역이나 금고,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성폭력 고발자들은 반대로 고소를 당하기 일쑤다.
피해자 두 번 울리는 허술한 법
유엔, 한국 명예훼손법 수정 권고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 목소리도
‘강간’을 ‘폭행이나 협박’이 있는 경우만 한정해 해석하는 형법도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연기자 지망생 A씨는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로부터 노래방에서 성폭행당해 경찰에 고소했지만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단순한 ‘비동의 간음’은 피의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 드린다”는 문자를 받았다. 사건은 결국 무혐의 처리됐다. 지난달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회의에서 루스 핼퍼린 카다리 부의장은 “한국은 강간을 너무 엄격하게 정의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했다.
미국과 영국 등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나라 민사적 손해배상은 ▶재산상 손해를 보전해 주는 배상과 ▶그 외 손해를 고려한 위자료로 나뉜다. 재산 손해의 보전을 위한 배상은 ‘노동력’만을 중심으로 평가해 낮게 책정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김재련 변호사는 “민사 위자료는 강간의 경우 5000만∼1억원 정도로 성범죄 피해자가 평생 받을 고통을 고려할 때 지나치게 낮다”고 말했다. 또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액의 배상을 하도록 하면 불법 행위의 가능성을 줄이는 동시에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지영·노진호·홍지유 기자·김환영 지식전문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