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의 한 우유 대리점 업주 김모(45)씨는 28일 "다른 지역에는 드문데 유독 전북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있다"며 반별 배식과 우유팩에 라벨 붙이기, 원 단위 절사(切捨·끊어 버림) 등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전주 지역 초·중·고교 9곳에 우유를 납품한 김씨는 "수차례 건의했는데도 학교 측은 '싫으면 입찰에 참여하지 마라. 우린 원하는 조건을 들어주는 업체와 거래하겠다'며 갑질을 부린다"고 토로했다.
전북 지역 우유 대리점 업주들이 뿔났다. 우유급식을 하는 도내 14개 시·군의 초·중·고교 상당수가 우유 배식을 업체에 떠넘기는 등 이른바 '갑질'을 하고 있어서다. 지난해까지 이런 학교가 전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업체들이 민원을 제기해 전보다는 줄었지만, 전체 학교의 20~30%는 여전히 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우유업계는 보고 있다.
전북 지역 업주들 집단 반발
"정부 매뉴얼 어긴 갑의 횡포"
교육청, 자제 요청 공문 발송
학교 "우리들은 편한데…"
업계에 따르면 우유 대리점들은 학교 측 요구에 따라 매일 오전 7시30분~8시30분 등교 시간에 맞춰 우유 상자를 반별로 갖다 준다. 학교마다 우유를 보관하는 냉장시설이 있지만 '무용지물'인 셈이다. 한 우유 브랜드 전북지점 관계자는 "대리점 직원 혼자서 3~4층 건물 계단을 오르내리며 반별 배식을 마치는 데만 20~30분이 걸리고 막상 우유를 갖다 놔도 학생들이 바로 먹지 않아 여름에는 제품이 상할 우려도 있다"고 했다. 그는 "어떤 사장님은 반별 배식 때문에 무릎이 상했다"고 귀띔했다.
우유팩마다 학생의 학년과 반·번호·이름이 적힌 라벨을 붙이는 것도 골칫거리로 꼽힌다. 업주들은 "인력과 비용 부담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한 학교에 수백 개에 달하는 우유팩에 일일이 라벨을 붙이려면 직원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노동 시간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영세한 업주들은 몸으로 때우고 있다. 대리점마다 많게는 10개 넘는 학교에 우유를 배달하기 때문에 라벨 붙이는 시간만 최소 2~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개인 정보가 담긴 라벨을 악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학생들이 유통 기한이 지난 우유에 특정 급우의 라벨을 붙여 골탕을 먹이는 식이다. 실제 지난해 전주의 한 여고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져 애꿎은 우유 대리점만 계약이 파기됐다고 한다.
이런 요구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하는 업체들과 달리 일선 학교에선 거꾸로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우유를 안 먹는 학생들이 많아 지난해까지 우유팩에 라벨을 붙였다"며 "업체들은 번거롭겠지만, 교사들은 덕분에 누가 우유를 마시고, 안 마시는지 파악하기 쉬워 급식 관리가 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반별 배식도 업체가 대신해주니 학생들이 굳이 매일 당번을 정해 옮기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반별 배식과 라벨 붙이기 등은 각 학교에 판단을 맡겼다. 지방계약법 6조 1항에 따르면 '계약 담당자는 이 법 및 관계 법령에 규정된 계약 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북도교육청 인성건강과 관계자는 "정부 매뉴얼이나 지방계약법에는 구체적 수치나 지침이 없어 금지를 강요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문을 보고 우유 급식 재공고를 낸 학교도 있다"며 "이미 (기존 관행대로) 계약이 이뤄진 학교는 어쩔 수 없지만, 교육청 차원에서 공지한 만큼 업체에 대한 과도한 요구는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전북도교육청에 따르면 전북은 지난해 기준 전체 초·중·고교 770여 곳, 학생 21만7000명이 급식 우유를 마시고 있다. 이 가운데 무상으로 우유를 마시는 학생은 5만2170명이다. 올해 학교급식 우유 가격(200mL)은 430원이다. 대부분 새 학기 시작 전인 2월에 학교마다 입찰 공고를 내고 우유 공급 업체를 선정한다. 2016년 도입된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를 통해서다. 전주 지역은 서울우유·남양유업 등 4~5개 우유 브랜드, 30여 개의 대리점이 입찰에 참여한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