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토]
정씨는 A고문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회식 장소에서 나와 길거리에 주저앉아 있었다고 했다. 이때 B과장이 나와 머리를 쓰다듬으려 했고 이를 거부하자 "왜 그렇게 경계 하냐. 사회성을 키우라"며 면박을 줬다고 한다.
“그것도 못 견디면 사회생활 못해”
쉬쉬하는 주변인도 2차 가해자
피해자 고립되며 성폭력 악순환
대구경북 여성단체연합의 한 회원이 1일 오전 대구지방검찰청 앞에서 흰 장미를 들고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흰 장미는 성폭력 피해 고발 캠페인인 ‘미투’를 상징한다. [연합뉴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도 피해지만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했던 동료들에게 받은 수치심도 크다"고 말한다. 디자인 회사에 다녔던 정씨는 26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성추행을 당한 것도 힘들었지만 회사 동료의 침묵과 오히려 나를 비난하는 듯한 언행이 큰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전북의 여성 연극 배우 송원(31)씨도 8년 전 한 야유회에서 극단 '명태' 최경성(50)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동료들에게 알렸지만 외면받았다고 했다. 송씨에 따르면 최 대표는 "극단의 앞날에 대해 얘기하자"며 송씨를 지난 2010년 1월 15일 충남 대천의 한 모텔로 억지로 끌고 갔다고 한다. 완강히 저항해 성관계는 피했지만 송씨는 그날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이후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들 "강간 당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송씨가 극단을 탈퇴하자, 오히려 단원들은 "송씨가 남자관계가 복잡해 극단에서 내쫓았다"는 최 대표의 말을 믿었다고 한다. 송씨는 26일 전북경찰청에서 기자들을 만나 이런 내용을 밝혔다. 최 대표는 이를 인정하고 사죄했다.
[중앙포토]이윤택, 노 연출가의 성추행 사과
정 구의원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9월 제주도에서 수성구 의원 연수 중 성추행을 당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술에 취한 동료 구의원이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몸 한번 보자"며 정 구의원의 객실에 진입을 시도했다. 구의회에서는 윤리위원회를 열어 해당 의원 제명안에 대해 투표했지만 8명 찬성, 8명 반대, 3명 기권으로 무산됐다.
전문가들은 동료의 묵인으로 피해자가 고립되면서 성폭력이 끊임없이 용인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런 악순환을 '강간문화'라고 표현했다.
그는 "왜 이윤택, 조민기 사건 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해서 나타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며"직급이 높은 사람이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것을 보고도 동료나 주변사람들이 침묵한다는 건 나중에 그 자리에 올라갔을 때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대구·전주=백경서·김준희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