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화의 마켓&마케팅
무뚝뚝하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냉정한 듯하지만 알고 보면 따뜻한 마음을 지닌 사람. 말하자면 반전매력의 소유자들이다. 모순적인 성격은 인간적 매력뿐 아니라 남다른 창의성으로도 연결된다. 30년 이상 창의적인 인물들을 연구해온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의 칙센미하이(Csikszentmihalyi) 교수는 ‘그들이 일하는 신비로운 과정을 관찰하며 발견한 공통점은 극단적으로 상반된 성향들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독선적인 사람이 이따금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츤데레 기업’을 아시나요
기술 아닌 가족애 강조한 구글
메르스 신속 사과한 삼성처럼
기업도 공감·소통하는 능력 중요
상반된 성향 공존할 때 창의성 높아져
반전매력이 힘을 발휘하는 것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2011년 ‘소피에게(Dear Sophie)’라는 광고를 선보였는데, 아빠가 딸 소피의 첫 번째 생일, 앞니가 빠진 날, 발레를 처음 배운 날처럼 기억하고 싶은 매 순간을 글과 사진, 동영상으로 기록해 이메일로 보내는 내용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구글이 딱딱한 데이터나 검색 기술이 아닌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광고를 선보였다’며 호평했다. 이 광고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광고, ‘새드버타이징(sadvertising)’의 효시로 꼽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매년 만우절에는 엉뚱한 장난으로 유머 감각을 발휘한다. 솔로들이 이상형을 찾아갈 수 있는 로맨스 지도, 마시면 지능이 향상되는 구글 드링크 등 괴짜 같은 아이디어로 재미를 선사해 만우절 팬클럽까지 확보했다. 2017년에는 네덜란드의 풍차 1만1000개를 하늘로 향하게 해 먹구름을 몰아내는 ‘구글 윈드(Google Wind)’ 프로젝트를 선보였는데, 기상캐스터, 바람 전문가까지 등장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할 정도였다. 구글다움(Googliness)은 혁신성과 정확성을 강조하는 고유의 정체성에 애틋함과 위트를 나누는 여유로움이 더해져 완성된다.
고객 어려움·슬픔에 진솔하게 공감을
2013년 셀프리지는 침묵의 방을 부활시켰다. 문명의 방해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발, 휴대폰을 라커에 두고 입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화려한 소비문화와 브랜드의 허상을 되짚어본다는 의미에서 브랜드와 로고를 제거한 리바이스 청바지, 하인즈 케첩 등을 판매하는 ‘조용한 매장(Quiet Shop)’도 오픈했다. 이 제품들은 지금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온라인 경매에 붙여지곤 한다.
소비자들, 아픔 공유할 때 동질감 느껴
미국 뉴욕주립대 사회심리학자 아서 아론(Arthur Aron) 교수의 실험은 나약함의 표출이 관계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해준다. 처음 만난 사람과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같은 얕은 수준의 대화보다 마지막으로 울음을 터뜨렸던 순간, 힘들었던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참여자들이 상대방을 훨씬 가깝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어려웠던 경험을 공유한 이들 중 30%는 수십 년간 알고 지낸 지인보다 처음 만난 실험 파트너에게 더 강한 연결감을 느낀다고 대답했고, 이중 결혼에 이른 커플도 나왔다.
최근 불거진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에 콧대 높은 애플은 애플답게 대응했지만, 고객의 손실과 실망을 무시한 고집스럽고 무성의한 모습으로 비쳤다. 고고한 이미지가 강하고 그래서 더 좋아하는 마니아층도 확보한 애플이지만,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일 줄도 알아야 한다. 만약 세상의 변화를 이끄는 선두기업이 겪을 수밖에 없는 딜레마와 고뇌를 진솔하게 털어놓았더라면 응원의 목소리가 커졌을지 모른다.
최근 한국 성인남녀 조사 결과 절반이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답했다. 20대 중에서도 이왕이면 감정을 숨기는 것이 좋다고 한 비중이 50%에 달했다. 그만큼 강인함과 엄숙함을 중시하고 유약함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라는 의미다. 이따금 진정한 내면을 들킬 줄 아는 츤데레들이 인기를 누리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