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키의 발상지
니가타는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다설 지역이다. 일본 스키장 강설량을 알려주는 스노재팬 사이트를 보니, 2월 21일 현재 누적 적설량 3m 이상인 니가타 스키장이 14개에 달했다. 홋카이도는 6개, 나가노 5개 뿐이었다. 니가타에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바람 때문이다. 동해의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묘코산(2454m)을 포함한 에치고(越後)산맥에 눈을 때려 붓는다.
‘설국의 고향’ 스키 여행
스키장 10개 모인 묘코고원
5월 초까지 슬로프 개방해
숲속 누비는 ‘트리런’도 재미
니가타현의 스키 명소는 묘코 지역과 유자와(湯澤) 지역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가 『설국』을 집필하고 온천을 즐긴 장소가 유자와다. 묘코코원에는 스키장이 10개 있다. 레르히가 스키를 가르친 카나야산을 비롯해 1937년 일본 최초로 국제 스키장으로 인정받은 아카쿠라 관광 리조트, 일본에서 가장 긴 8.5㎞ 활강 코스를 가진 스기노하라 스키장이 대표적이다. 2017년 12월 개장한 롯데 아라이리조트도 있다.
소니 패밀리가 만든 스키장
아라이리조트는 사연 많은 스키장이다. 1993년 소니 창업주의 장남인 모리타 히데오가 ‘아라이 리조트 앤 스파’를 지어 활강을 즐겼다. 일본에서도 최고급 리조트로 주목 받았지만 금세 암운이 닥쳤다. 2000년대 들어 소니의 기세가 꺾였고, 일본 경기침체로 스키 인구가 급격히 줄었다. 2006년 아라이는 폐업을 선언했다.
흉물스럽게 방치된 아라이를 주목한 게 롯데였다. 2015년 18억엔(약 180억원)에 리조트를 인수한 롯데는 2년간 보수 작업을 거친 뒤 2017년 12월 스키장을 다시 열었다.
개장 한 달이 지난 1월 20일 아라이리조트를 찾았다. 오후 4시. 산 정상부로 향하는 곤돌라 운행은 멈췄다. ‘롱런 코스’ 하단부 약 1㎞ 길이 슬로프에서 스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이 코스만이 오후 4시부터 8시까지 열려 있었다. 아라이리조트에는 슬로프 11면, 리프트 4개, 곤돌라 1개가 있다.
스키장은 한산했다. 리프트 5대 걸러 한 대 꼴로 스키어가 타 있었다. 몸을 풀고 숨을 가다듬은 뒤 스키를 내딛었다. 어? 중급코스라더니, 만만치 않았다. 지도에는 직선처럼 보였는데 슬로프 폭이 들쭉날쭉했고, 경사도 제법 가팔랐다. 안전펜스도 없었다. 설질이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김상민 아라이리조트 총지배인은 “최근 이상 고온인데다 눈도 많이 안 내려 슬로프가 습한 편”이라면서도 “정상부에 가면 밀가루 같은 파우더 설질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을 고대하며 온천에서 뭉친 근육을 풀었고, 일식당에서 해산물을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다시마 우린 두유에 방어 뱃살을 담가 먹은 샤부샤부 맛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무를 공격합시다”
1월 21일 오전 8시 30분. 곤돌라를 탔다. 리조트 직원인 야스다 토모 마케팅팀장과 알파인 국가대표를 지낸 이토 타츠야가 동행했다. 해발 1280m, 정상부에 도착했다. 앙코르 코스(1.4㎞)에서 몸을 푼 뒤 최장 코스인 롱런(5.2㎞)을 활강했다. 설질은 어제보다 좋았다. 스키가 덜그덕거리는 느낌이 없었고 숫돌에 칼 가는 소리가 났다.
“이제 파우더 스키를 즐겨보죠. 정설차가 눈을 다지지 않은 비압설(非壓雪) 구역이 스키장 안에 이렇게 많은 곳은 일본에서도 드뭅니다.”
“이번엔 나무를 공격합시다.” 나무 사이로 활강하는 트리런(Tree run)을 하자는 뜻이다. 이름 모를 키 작은 나무와 자작나무, 삼나무를 휘감고 돌았다. 보통 슬로프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였다. 비행시간이 임박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이토가 휴대전화를 보여줬다. “다음에도 함께 미끄러집시다!”
◆여행정보
대한항공이 인천~니가타 노선을 주 5회 운항한다. 니가타공항에서 묘코까지는 약 150㎞.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가도 된다. 아라이리조트를 가려면 조에쓰묘코(上越妙高)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뒤 무료 셔틀을 타면 된다. 리프트권은 하루 6000엔(약 6만원)으로, 날짜가 길수록 저렴하다. 리조트 홈페이지(lottearairesort.com) 참조. 5월 초까지 스키를 탈 수 있다. 자세한 여행정보는 니가타현 관광과 홈페이지(enjoyniigata.com/kr) 참조.
묘코(일본)=글·사진 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