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요하는 이들을 학대·性착취…국제구호단체들 ‘벗겨진 가면’
“(내전 중에) 식량이나 돈을 구할 길이 없었어요. 그들(유엔평화유지군)은 잠자리 대가로 4달러를 주겠다고 했어요.”(중앙아프리카공화국 16세 소녀, 2016년 언론 인터뷰)
“옥스팜 스캔들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다. 유엔을 포함해 모든 자선·구호단체에 만연해 있는 국제적 문젯거리다.”(전 유엔 긴급조정센터 책임자 앤드루 맥클레오드)
전쟁·기아·재해 등으로 황폐화된 땅에 신(神)을 대신해 달려간 국제구호활동가들. 그들 중 일부가 헐벗고 굶주리는 현지인들을 돕기는커녕 한푼의 돈, 한줌의 식량으로 인권을 유린한 백태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영국 기반의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직원들이 2011년 중미 국가 아이티에서 지진 피해자 구호 활동 중에 성매매를 했다는 스캔들이 불거지면서다. 1942년 출범해 전 세계 90개국에서 1만여명의 직원을 둔 옥스팜은 역사나 규모 면에서 국제구호단체의 '맏형' 격이다.
옥스팜 아이티 성매매 스캔들 일파만파
옥스팜 후원자 7000명 무더기 기부 취소
앞서 영국 더타임스의 보도로 중미 국가 아이티에서 강진 발생 이듬해인 2011년 롤란드 반 하우어마이런 소장 등 현지 옥스팜 직원들이 성매매를 했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규모 7.0의 강진이 발생해 2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이들은 직원 거처에 여성들을 불러 섹스 파티를 벌였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옥스팜은 관련 직원들을 해고·이직 조치를 했지만 더타임스 보도 전까지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아 은폐 의혹도 받고 있다. 나아가 다른 국제구호단체에도 이 같은 도덕적 타락이 비일비재하다는 폭로가 잇따랐다.
아동구호단체 ‘세이브 더 칠드런’의 케빈 왓킨스 대표는 이날 하원 청문회에서 “2016년 아동안전 관련 53건의 문제적 행동을 적발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성 관련 비위가 얼마나 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적십자와 크리스천 에이드 등 다른 구호단체들에서도 수년 간 다수의 직원 비위가 적발됐지만 경찰 고소 등 공론화된 것은 거의 없다. 조직에서 쫓겨났다 해도 다른 자선단체에 버젓이 재취업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전방위 조사에도 재발 막지 못해
정부 지원금 의존… '비위' 발각될까 쉬쉬
문제 있는 활동가가 극히 일부라 할지라도 이는 구호단체 전반의 신뢰도 하락을 부른다. 특히 후원금 모금 광고 등에서 구호활동가의 이미지가 ‘사선(死線)에서 헌신하는 선한 사람들’로 채색돼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자의식은 일부 구호활동가들을 잘못된 도덕 관념으로 이끌기도 한다. 영국 싱크탱크 시비타스(Civitas)의 조너선 포맨 수석연구원은 CNN 기고에서 “수년간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 속에 일부 활동가들은 ‘일반인의 도덕적 규칙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잘못된 의식을 갖게 된다”고 꼬집었다.
재난현장의 '권력 의식' 경계해야
이태주 한성대 교수(개발인류학)는 “재난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역설적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문제는 도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간의 '권력 관계'에서 비롯된다”면서 “인도주의 활동가들이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강도 높은 교육과 책무성이 요구되며, 문제를 은폐할수록 일벌백계하는 문화가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