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앙방송(CC-TV)이 지난 15일 방영한 설 특집 버라이어티쇼 춘완(春晩, 春節聯歡晩會·춘절연환만회의 준말)이 흑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논쟁의 발단은 올 춘완의 단막극 ‘동희동락(同喜同樂)’에 중국의 중견 여배우 러우나이밍(婁乃鳴)이 얼굴과 몸에 검은 칠을 하고 가슴과 엉덩이에 보정물을 넣고 중국인과 결혼하려는 아프리카 철도 여승무원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면서다. ‘동희동락’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신실크로드) 정책에 아프리카 주민들이 감사하고 있다고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10억 명 시청 올해 춘완서 ‘일대일로’ 선전 단막극 논란
아프리카 유학생 “모멸감 느껴”, 중국 시청자 “문제 없다”
“‘백인 구세주’ 신화 대체하겠다는 관념 벗어야” 비판도
하지만 중국 여론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베이징 주민 쉐리샤는 AP통신 인터뷰에서 “만일 인종차별 의도가 있었다면 당국이 방영을 허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방송을 옹호했다. 또 다른 주민 저우헝산은 “중국 배우가 연극이나 드라마에서 외국인 분장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특정 민족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중국 매체 역시 해명에 나섰다. 친신민(秦新民) 올해 춘완 단막극 감독은 19일 법제만보 인터뷰에서 “애초 지난해 흥행 영화 ‘전랑(戰狼)2’에 출연했던 아프리카 배우를 캐스팅하려 했지만 중국어 수준이 낮아 극 출연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러우나이밍 선생은 원래 이 작품의 감독이었으나 제작진의 권유에 못이겨 출연해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올해 춘완의 흑인 차별 논란은 과거 사례까지 보태지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2016년 5월 방영된 중국의 한 세제 광고는 중국인 여성이 흑인 남성 입에 세제를 넣고 세탁기에 밀어 넣자 하얀 셔츠를 입은 중국 남성으로 변한다는 내용을 담기도 했다.
해외 언론이 이번 논란에 주목하는 이유는 춘완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중국에서 춘완은 올림픽 개막식과 버금가는 국가급 프로젝트로 해가 갈수록 체제 우월성을 선전하는 무대로 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중국어판의 류추디(劉裘蔕) 칼럼니스트는 19일 인종 비하 논란을 소개하며 “‘중국 구세주’가 역사적으로 잘못된 ‘백인 구세주’ 신화를 대신할 것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올해 춘완 말미에 나온 ‘세계 각국과 국제기구 지도자의 새해 인사’에는 안토니오 구테헤스 유엔 사무총장,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재,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출연했다. 한국 문재인 대통령 촬영분은 춘완 대신 전날 오전 뉴스 프로그램 ‘조문천하(朝聞天下)’에서 방영되는 데 그쳤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