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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인사이트] ‘황제의 스승’ 왕후닝 … 시진핑은 왜 그를 곁에 두나

중앙일보

입력 2018.02.1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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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인(文人)은 ‘제사(帝師, 황제의 스승)’를 꿈꾼다. 한 지도자를 모시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 일인데 세 명의 지도자를 20여 년 넘게 연속으로 보좌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인물이 있다. 대학교수에서 중국 공산당 서열 5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왕후닝(王滬寧)이 그다. 중국 지도자는 왜 그를 곁에 두나. 그는 시진핑 국가주석에게는 무슨 조언을 하나. 현대 중국을 알려면 왕후닝부터 읽어야 한다.
 

1995년 1월 상하이 인민출판사에서 『정치 인생(政治的人生)』이라는 왕후닝의 개인 일기가 출간됐다. 책값은 8.7위안. 당시 왕은 푸단(復旦)대 교수였다. 지난해 10월 19차 당 대회에서 그가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자 책은 정가의 300배를 주고도 사기 어려워졌다. 왕후닝의 주가가 얼마나 폭등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진핑까지
삼대의 국정이념 설계한 왕후닝

중국 지도자들 매료시킨 이유는
전통서 답 찾고 권위 강조한 까닭

서방 가치와 경험도 적극 유입해
중국식으로 바꾸는 자신감 과시

1955년 산둥성 라이저우(萊州) 출생으로 푸단대 졸업 후 모교 강단에 서던 그가 중앙무대에 진출한 건 95년의 일이었다. 상하이방(上海幇)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은 게 계기였다. 왕은 이후 장쩌민과 후진타오의 국정 이념인 ‘삼개대표론’과 ‘과학발전관’에 이어 시진핑의 치국 사상인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설계했다. 삼대(三代)의 ‘제사’로 활약 중인 것이다.


도대체 왕후닝의 어떤 생각이 중국 지도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는 기본적으로 ‘강한 국가’와 ‘강한 당’의 존재를 앞세운다. 그리고 이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에 관심이 많다. 지난 20여년 간 중국을 이끈 삼개대표론과 과학발전관, 그리고 ‘시진핑 사상’의 공통점이 뭔가. 결코 흔들리지 않는 당과 국가의 존재를 그 핵심가치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에선 정치가 당과 유리돼 존재할 수 없고 또 활동할 수도 없다는 게 왕후닝의 믿음이다. 물론 그는 정치체제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 출발점은 중국이 처한 현 상황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치체제 개혁은 우리나라의 현 단계 조건을 넘을 수 없다”는 발언이 예다.
 
왕후닝의 권위주의적 시각은 중국과 중국 정치를 바라보는 그의 종합적 사고에서 파생된 결과다. 그는 자신의 사유 뿌리를 중국의 전통에서 찾고, 이에 따라 그의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어 왔다. 바로 이 대목이 시진핑 등 중국 지도부를 매료시킨 포인트다. 왕은 현 단계 중국 정치의 행태는 대부분 중국의 역사에서 연유한 것이라는 전통주의적 맥락을 중시한다. 즉 “일정한 정치 체제는 반드시 일정한 역사와 사회, 문화 조건에 적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왕의 사고를 이해하려 할 때 서방에서 스며들어 간 세련된 방법론적인 틀을 이용하는 게 통하지 않는 이유다. 예를 들어 중국 간부제도의 경우 중국은 그 원류를 서방식 선거 전통에서 찾는 게 아니라 한(漢)나라 시대의 찰거제(察擧制, 추천→시험→관리 임용)와 같은 전통에서 찾으려 한다. 전통을 중시하는 왕후닝의 사고체계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사유는 “꽃을 이식하거나 나무를 접목할 수 없으며 묘를 뽑아 자라게 할 수도 없다(不能移花接木 也不能搞拔苗助長)”는 중국식 사고로 이어진다. 마치 중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고가 기저에 깔렸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왕이 서방적 사고를 모두 비판하고 불신하는 건 아니다. 그는 서방의 정치 행태에 매우 친숙하다. 미 아이오와대학과 버클리대학은 물론 일본 게이오대학에서도 방문학자 경험이 있다. 서방 정치의 장단점을 체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고 서방 경험을 유입하는 데도 적극적이었다. 조지프 나이가 주창한 ‘소프트파워’를 ‘롼스리(軟實力)’란 중국어로 수입한 것도 사실 그였다.
 
중요한 건 그가 경험한 서방 정치의 여러 개념이 지금은 이미 보편적 개념으로 환원돼 중국 내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 자유, 평등이란 개념도 개혁개방 초기엔 서방의 개념이고 자본주의적 속성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왕은 적어도 이들 개념을 ‘서방적인 것’ 또는 ‘중국적인 것’ 등으로 낙인 찍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를 중국적 환경에 적용해 중국식으로 변용함으로써 적응력과 설득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재구성해왔다. 즉 중국 것을 중시하되, 중국적인 것만 중시하는 고립주의적이고 단편적인 사고에서는 비교적 자유롭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외부의 사상과 문화의 공격에 대해 일정 정도의 적응력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의 발로이기도 하다.
 
왕후닝은 중국을 중심에 두고, 당과 국가의 영도력을 근간으로 삼아 외부의 여러 사조와 사상을 중국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충분히 수렴, 수용, 변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나라를 통치하고 인민을 보위하는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는 바로 치국의 근본이고 치국의 도리인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행위는 매우 위민(爲民)적이어야 하고, 국가의 목표 역시 애국주의에 기반을 둬야 한다. 시진핑이 외치는 중화의 부흥 또한 위민, 애국의 연장선에 있는 사고의 결정체다.
 
1994년 7월 31일의 일기에서 왕후닝이 부패가 당과 국가를 어떻게 약화시키고 또 그 기초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그리고 특히 고위층의 부패가 왜 치국에 치명적인 해악이 되는지 강조한 맥락도 여기에 있다. 시진핑이 당 영도 간부의 솔선수범을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왕후닝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왕후닝이 꿈꾸는 중국은 전통에서 답을 찾고, 안정된 리더십이 존재하며, 당내 논의가 활성화되고, 새로운 권위가 늘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요소는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정치의 모습이다. 왕후닝의 장기 생존은 바로 이와 같은 지혜와 논리, 그리고 최고 지도자들의 이해가 결합한 환상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왕후닝의 등장은 우리에게 큰 기회일 수 있다. 권위주의 정권의 경험과 유교 문화의 경험, 그리고 민주화 경험까지 가진 한국은 학자 출신의 왕후닝에겐 분명 연구 대상이다. 우리로선 한국만의 독특한 민주화 경험을 중국 정치에 전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때 싱가포르를 가장 강력한 중국의 발전 모델로 간주했던 왕후닝에게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민주화를 그려낼 대안적 모델로서 한국은 충분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양갑용
중국 푸단대에서 중국정부와 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공산당의 내구성, 중국 엘리트 정치, 중국정부개혁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중수교 25주년사』 등 다수의 단행본 저술에 참여했다.

 
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