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다. 어쩌면 올해 안으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게 됐다. 만약 올해 안으로 남북정상회담이 하게 되면 김대중 정부 3년 차, 노무현 정부 5년 차보다 빨리하는 셈이다.
김정은 핵무력 완성 선포에 이어
서둘러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 초청
유엔 대북제재의 '공포'가 두려운 탓
한국은 친미, 친일 외교가 필요한 때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을 교훈 삼아야
아베 총리는 북·미 관계 개선 역할 놓쳐
서서히 목을 조여오는 유엔 대북제재의 공포가 생각보다 무섭게 느껴진 모양이다. 이대로 계속 가다 보면 정권이 존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같다. 독재국가의 지도자들은 인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기 일쑤였다. 북한도 마찬가지였고 인민들에게 그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김정은이 아닌 미국으로 돌렸다. 그리고 장마당의 활성화로 개인이 먹고살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줘 고통의 ‘면역력’을 키워줬다.
하지만 이웃 나라 중국마저 동참하는 제재가 과거와 다르고 버텨내기가 어려워졌다. ‘코피전략’으로 알려진 미국의 군사압박도 실현 여부를 떠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포한 마당에 추가 도발의 명분도 떨어진다.
따라서 김정은은 진퇴양난을 벗어나려면 어렵지만 어쩔수 없이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에게 기회이자 역할이다.
먼저, 친미·친일 외교가 필요하다. 미국과 일본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다해야 한다. 싫고 좋고는 다음 문제다.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1876~1967) 총리의 서방정책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빌리 브란트(1913~1992) 총리의 동방정책은 역사 속에서 기억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리고 미국·일본의 마음을 사로잡은 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만약 이들의 이해와 협조 없이 남북정상회담을 강행하면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날 공산이 높다.
둘째, 북한과는 열정을 식히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미·일은 갑작스러운 남북대화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대북 압박의 보조를 맞춰오다가 한국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을 가진 것 같다. 남북관계는 이들 국가와 따로 떨어져 진행할 수 없고 성공한 적도 없다. 북한도 말로는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자신이 북·미 관계의 다리를 놓아주려고 하다가 허탈한 신세가 됐다. 지난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식 리셉션장에서 먼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찾아간 데서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 간부는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구체적인 행동을 일절 표시하지 않는데도 문 대통령이 방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영남·김여정 등 북한 대표단은 11일 평양으로 돌아가고 북한 삼지연관현악단도 이날 서울 공연을 마치고 돌아간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재개된 남북관계의 이벤트는 이것으로 끝난다. 이제는 남북정상회담을 만들어 가야 한다. 많은 장애물을 넘기 위한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현장에 답이 있다. 화려했던 이벤트는 잊어버리고 냉정하게 ‘숙제’를 풀어나가야 할 때다.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ko.soosu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