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동시에 가장 네이버답지 않은 회사이기도 하다. 뉴스 편집권이나 골목상권 침해 논란을 일으키며 관련업계와의 상생보다 자사 이익에 더 관심 있는 거대 독점기업이라는 기존 네이버 이미지와 달리 출발부터 파트너인 웹툰 작가의 수익을 우선 목표로 세워 윈윈하는 협력관계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이곳에선 자발적인 동기로 뭔가 하고자 하면 말단 신입사원이라도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고, 정해진 대로만 하라고 강요받는 대신 선택해서 일할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서로 깎아내리는 경쟁 대신 협업을 하면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는다. 가령 김 대표가 '재미'를 좇아 열정적으로 일했더니 포브스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인'(2014년)이라는 글로벌한 인정을 받은 것처럼.
굳이 AI(인공지능)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기술이 급속도로 인간을 대체해 직업의 종말이 눈앞에 다가온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진짜 일'의 모습을 네이버웹툰에서 찾아보려는 이유다.
대졸 평사원의 무모한 12년 플랜
망해가던 만화를 글로벌 콘텐트로
네이버웹툰에서 만나는 '일의 미래'
김준구 대표의 키워드는 재미&동기
주어진 일 말고 하고 싶은 일
강요 대신 선택의 자유가 핵심
'일의 미래'를 만나다
그런데 지난해 말 이런 무관심을 뚫고 세대를 아우르는 관심을 모은 웹툰이 하나 나왔다. 네이버웹툰의 인터랙션툰 '마주쳤다'이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자마자 독자가 곧바로 웹툰 캐릭터로 등장하는 신기한 웹툰으로, 6회에 5000만 누적 조회라는 큰 성공을 거뒀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네이버웹툰의 어제와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도 어찌 보면 2004년 대졸 신입사원으로 네이버 개발팀에 입사한 김준구 대표로부터 비롯됐을지 모른다.
진짜 일은 자발적 동기로부터
"까짓거 내가 책임지지 뭐". 누구 허락도 없이 다른 업무 예산을 일부 돌려서 2004년 말 디지털 만화 서비스가 아닌 네이버의 첫 웹툰을 만들었다. 이젠 네이버웹툰을 대표하는 작가가 된 김규삼의 '정글고'는 그렇게 나왔다. 만화책 8000여 권을 모은 덕후답게 '촉'을 발휘해 웹에 맞을 것 같은 콘텐트를 제안한 게 먹혔다. 뒤늦게 알고보니 김규삼 작가는 당시 잡지 연재가 끊겨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의 촉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김규삼은 없었을 지도 모른다.
이를 출발점으로 하루 3시간만 자는 고강도 업무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개발자로 주어진 업무를 하고 웹툰 관련 업무는 사무실에서 퇴근 후 진행했다. 누가 시키면 죽어도 못하겠지만,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좋아하던 작가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퇴근 후 새로운 일이 시작돼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자다가도 작가 전화 오면 같이 수다 떨고 마감 안 하고 게임하러 다니는 작가 추적하는 일도 마다치 않았다. 오죽하면 조석이나 이말련 같은 스타 작가 작품 속에 '쪼는' 편집자 캐릭터로 등장할 정도다.
누구라도 부여받는 책임과 권한
하지만 그 과정은 쉬웠을 리가 없다. 지금 네이버웹툰을 만든 대표적인 작가발굴 서비스인 '도전 만화'와 '베스트 도전'도 무모하게 태어났다. 2006년 도전 만화를 처음 런칭했지만 텅 빈 게시판에 아무도 작품을 올리지 않았다. 미끼가 필요한데 마케팅 예산은 전혀 없었다. 결국 준구님이 사비 700만원 들여 프린터 등 경품을 내건 작은 공모전을 했다. 이를 계기로 공전의 히트작인 조석의 '마음의 소리'도 탄생할 수 있었다.
준구님이 사내독립기업(CIC)장을 거쳐 2017년 자회사 대표가 되기까지 줄곧 시도하고 있는 수퍼패스는 원래 좋은 콘텐트 발굴을 위한 제도다. 하지만 동시에 대표 본인이 누린 책임과 권한을 직원들도 똑같이 가질 수 있는 제도이기도 하다. 20~30명의 기획자들이 모여 어떤 새 작품을 시작할지 회의를 한다. 모두 "안 된다"고 해도 누군가 "내가 책임지고 해보겠다"라고 선언하면 CEO라도 비토할 수 없다. 그렇게 1년에 2~3건의 수퍼패스가 나온다. 물론 실패도 있지만 '연놈' 같은 히트작은 순전히 이 제도 덕에 세상 빛을 봤다.
경쟁보다는 협력이 우선
국내에서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협력은 중요한 키워드다. 2014년 7월 글로벌웹툰 서비스인 라인웹툰 출시해 영어와 인도네시아어, 태국어, 중국어 등으로 현지 작품과 국내 번역작을 서비스하고 있는데 각 나라별로도 한국과 비슷한 신인작가 발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강요 아닌 선택의 자유
가령 셀카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하일권 작가 캐릭터로 변환하는 AI 딥러닝을 활용한 '마주쳤다'를 출시하기 직전엔 정말 말 그대로 퇴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었다. 대표 생각에 한 1000번만 돌려도 될 걸 2000~3000번 돌리며 보다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드는 재미에 빠져서다.
이 프로젝트 기획자인 정진 매니저는 "캠프모바일이나 밴드 등 네이버 다른 부서에서 일할 때와 비교해도 이곳 업무 강도가 정말 센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불만은 없다. 이승훈 매니저는 "일이 많아서 힘들진 않다"며 "대기업 계열이었던 그전 회사도 야근은 많았는데, 똑같은 야근이라도 어쩔 수 없이 강제로 하느냐 아니면 자발적으로 하느냐가 천양지차"라고 했다. 이렇게 재미가 있어야 본인은 물론 회사에도 긍정적인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기에 김 대표가 새로 사람을 뽑을 때마다 늘 첫 질문은 "웹툰 좋아해요?"로 시작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가 근무시간 단축이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찾고자 워라밸을 외치지만 역설적으로 워라밸을 외치는 직업이야말로 곧 소멸하거나 대체될 직업일 가능성이 크다. 살아남을 미래의 진짜 일이 무엇인지, 네이버웹툰이 우리에게 그런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